우리 반의 꼬마 박사님들

2005.12.13 10:29:00


"얘들아, 오늘 슬기로운 생활 시간에는 친구들과 함께 길이 재기를 공부할 거야. 먼저 교실 뒤에서 교실 앞까지 재어 보자. 어떻게 재면 좋을까? 자기 생각을 말해 볼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반의 박사인 한서효가,
"예, 선생님. 저는 제 키로 재어 보고 싶어요."
"어떻게 서효의 키로 교실 바닥의 길이를 잴 수 있을까?"
내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교실 맨 뒤로 가서 바닥에 길게 누운 채 자기 키를 분필로 표시하는 서효의 기발한 생각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발표를 해댑니다.
"예, 선생님. 저는 제 발자국으로 재어보고 싶어요."
"예, 저는 제 공책으로 잴래요."
"저는 긴 막대기로 재볼래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자기가 말한 방법대로 교실 바닥을 재기 시작합니다. 교실 바닥에 누워서 온몸으로 재던 서효는 이번에는 조그만 지우개를 들고 한참을 세고 있습니다. 왼발과 오른발로 앞 뒤를 꼭 붙인 채 재는 아이, 공책을 바닥에 대고 연신 분필로 표시를 하면서 숫자를 중얼거리는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며 쫑알댑니다. 수를 세어 가다가 까먹은 은혜는 다시 세느라 바쁩니다. 1학년에게 100을 넘긴 수를 세게 하는 일은 무리인 줄 알지만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보며 가만 두고 보았습니다.

자기가 재어서 알게 된 결과를 기록하던 아이들은 어느 새 길이가 긴 물체로는 먼 거리를 재기에 좋다는 것을 발견한 모양인지 싱글벙글입니다. 이번에는 교실에 있는 물건 중에서 자기 키와 같은 물건을 찾아 보자고 했더니,

"예, 선생님. 제 키와 비슷한 물건은 찬우입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습니다. 찬우가 물건이냐고요. 우리 반 아이들은 이렇게 늘 기상천외한 답변을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답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자기 키를 대보고 비슷한 물건을 기록한 아이들을 몰고 이번에는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작은 운동장 담벼락에서 급식실 벽까지 재보자고 했더니 참 좋아합니다. 아이들 손에는 벌써 줄넘기와 자기 키만한 막대기와 팽이채까지 등장했습니다. 날씨는 좀 쌀쌀해도 아이들을 몰고 따스한 햇볕 아래 숫자를 세며 길이를 재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청아한 초겨울 하늘이 맑게 내려다 봅니다.

담벼락에 기대어서 자기 발을 일직선으로 만드느라 균형이 잡히지 않은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깔깔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행복합니다. 이 아이들이 먼 후일에도 오늘처럼 다정하게 인생의 힘든 고개를 함께 넘기를 짧은 순간 생각했습니다.

길이를 재며 세어 보는 숫자 공부로 수학을, 몸의 균형을 잡으며 작은 운동장의 거리를 가늠해 보며 과학의 즐거움을, 혼자서는 잴 수 없는 줄넘기는 둘이 잡아주며 협동심을 배웁니다. 하나, 둘 소리 맞춰 어깨동무를 하고 발길이로 거리를 재는 모습 속에서는 따스한 우정을 봅니다.

길이를 재보는 슬기로운 생활 공부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꼬마박사들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귀여워서 나는 또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한 장면만 찍게. 이렇게 추억을 남겨야 해."

이렇게 남긴 사진과 글들이 성탄절 무렵이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답니다. 아이들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엮어 우리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어 참 행복합니다. 아이들 곁에 있는 동안을 소중히 하며 깜찍한 언어와 아름다운 순간을 진솔하게 기록하여 헤어지는 날 책으로 안겨 주고 싶습니다.
(12월 20일 경에 '가난한 내 그릇'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 구경을 합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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