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외국인 근로자 천국 도시, 청명고

2005.12.28 09:06:00


수원 영통에 있는 청명고(교장 김청극)에는 한 달에 한 번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천국도시가 만들어진다. 아니 느닷없이 웬 쌩뚱맞은 소리? 아니다. 벌써 3년째인데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수원 인근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왜?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의 날'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같은 민족끼리 만나게 해 주고 실컷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성탄절 날 아침. 휴대전화 부재중 전화 9통의 송신자를 확인하니 경기교육자원봉사단체 협의회(약칭 경자협) 이상민 사무국장(반월정산고 교사). 그러고 보니 바로 오늘이 바로 며칠 전 약속한 그 날. 경자협 외국인 근로자 무료진료 활동 담당인 박일곤(이현중 교사)팀장님과 통화하니 수원역과 병점역 근처의 외국인을 데려오라는 지령이 떨어진다.

방글라데시인 5명을 태우고 청명고에 도착하니 주차장엔 차량이 가득하다. 임시 식당인 1층 교실에는 떡국 배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명고 학부모지도 봉사단 십 여분, 청명고 학생들이 급식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반찬을 보니 김치, 잡채, 떡, 치킨, 귤이 차려져 있고 외국인 근로자가 교실에 꽉 차 있다.

13:00. 식사가 끝나자 2층 회의실에선 '성탄절 축하 공연'이 열리고 있다. 사물놀이,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캐롤송, 탈북자 예술인의 가요 그리고 태국인과 방글라데시인들의 장기자랑 무대가 이어진다.

14:00. 다시 1층으로 내려가니 복도와 교실에 장이 섰다. 옷가게, 쌀 가게, 생필품 가게 등. 스웨터가 500원, 샴푸가 500원, 타월도 500원, 쌀(러브 米)은 3Kg이 2천원이다. 가전제품도 보인다. 가격을 물으니 이건 시중 가격이 아니다. 너무나 싸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자존심을 생각하여 약간의 값을 받고 판매를 하고 있다.

교장실 앞에는 병원진료를 위한 접수대가 있고 그 옆에는 혈압측정 등 기초진료를 하고 외국인 환자와 학생도우미가 1 : 1 매치가 되어 진료를 종료하고 모든 서비스 이용한 뒤 이 천국도시를 떠날 때까지 밀착하여 안내를 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교실 두 칸에는 약국, 내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치과, 피부과, 정신과가 개설되어 외국인과 탈북 이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다. 복도 한 쪽 끝에는 미용실이 차려져 있다. 경기도의 최고의 미용사(기능장소지)님들이 정성스럽게 찾는 이들의 머리를 정리해 준다. 한편, 외국인들에게 우리 말과 글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한글교실을 운영하여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이 정도면 하나의 도시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이 행사의 주관처는 새인류운동본부(본부장 권길중/한국시민사회봉사회 서울포럼 위원장)와 경자협(회장 이중섭)이다. 권 본부장은 "2003년 9월, 최정숙 교장선생님의 협조로 학교를 빌려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를 시작했는데 후임 교장이 반대를 할까봐 크게 걱정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김청극 교장이 경자협 부회장이어서 안심을 했고 지금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김 교장은 한 술 더 떠 "어느 교장이 와도 변하지 않게 아예 학운위에 안건을 올려 학교 장소 제공을 통과시켰다" 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오늘 나누어 줄 타월 100개를 꺼내 보인다. 학운위원장이 속한 모 단체에서 기증한 것이란다.

그렇다면 권 본부장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야만 하는 이 어려운 일을 왜 시작했을까? 그는 몇 해 전 태국을 여행하다 반한(反韓)단체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한국을 다녀간 태국인들이 임금을 못 받아 '한국은 나쁘다'며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그는 체류 외국인에 대한 이미지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일인 것이다.

권 본부장은 "그들은 병원에 가려 하지 않아요. 웬만큼 아파도 참고 견딥니다. 그래서 무료 진료를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자원봉사 변호사를 활용하여 악덕 사업주로부터 외국인 근로자의 체불 임금을 받아내기도 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들이 귀국 선물을 이곳에서 사는데 만원 정도면 부모, 형, 동생, 가족 모두의 선물을 푸짐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며 알뜰 시장을 자랑한다. 알뜰 시장은 자원봉사를 맡은 임원들이 선물 받은 물건 중 사용하지 않은 것을 기증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활동의 경자협 실무팀장인 이현중 박일곤교사는 "이 봉사활동이 작은 민간외교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임금 체불, 임금 떼어먹기 등으로 안티코리아로 번지는 것을 바로잡아 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맨 처음에는 태국인들이 제일 많았지만 지금은 태국, 방글라데시아, 인도네시아, 몽고, 필리핀, 베트남, 나이지리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스리랑카 그리고 탈북이주민들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고 귀띔해 준다.

오늘 참가한 근로자는 태국, 방글라데시, 몽고, 필리핀, 베트남에서 외국인과 탈북자등 총 백여명 정도. 귀가길에 그들은 선물 가방을 하나 씩 들었다. 그 속의 내용물을 보니 치약, 수건, 양말, 화장품, 탁상시계, 녹차, 브래지어, 스타킹 등이 들어 있다. 경자협 등 이 활동을 돕는 단체에서 준비한 물건들이다.

16:00. 진료를 마친 방글라데시인들이 귀가할 시간이다. 세 명을 태우고 화성시 정남농협을 향한다. 차안에서 그들에게 물었다. 방한한 지 5년째라고 한다.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요?"
"한국, 참 좋아요."

"그 이유는 무엇이죠?"
"돈 벌러 왔는데 돈을 벌게 해주어서 좋고요. 한국엔 깡패와 도둑이 없어서 좋아요."

새인류운동본부와 경자협, 그리고 청명고등학교 선생님과 자원봉사 학생들, 그리고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도와주는 여러 단체와 사람들. 국가가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매월 넷째 주 일요일, 청명고등학교는 행복마을로 변한다. 외국인 근로자나 봉사에 참가한 내국인이나 모두 행복감에 젖는다. 소외된 이웃에 사랑을 전하는 따뜻한 나눔의 실천! 오늘 본 성탄절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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