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장엄한 일출을 보면서 새해 소망을 염원한지 며칠이 지났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일출을 맞은 사람이나 일출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새해는 다가왔다.
묵은해와 새해가 다르지 않은데 새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세월의 흐름이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어 한다. 자신을 비롯한 사회나 국가의 어려운 점들이 해가 바뀌면서 모두 해소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고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인 명예를 기원할 것이다. 새해를 맞아 미래에 대한 설계와 자신의 마음을 다진다. 금연, 금주, 독서 등 나쁜 습관 버리기와 좋은 습관 갖기 등 자신과의 약속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태양을 보면서도, 같은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희로애락’의 연속이지만 서민들에게는 ‘로’와 ‘애’의 연속일 수 있다.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인 사람들이 맞이하는 태양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경제력의 양극심화 현상이 빨리 극복되기를, WTO로 인한 농촌의 어려움, 대자본에 잠식되어 버린 소 자영업자들의 폐업사태, 사교육비 증가로 인한 가계의 어려움 등 수 많은 난제들이 해결되기를 소망할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을 해결해야 될 주체는 물론 국가겠지만 사회 지도층이나 부유층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물론 본인들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얼마 전 우리 학교의 6학년 여학생이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선생님, 저 이사 가요.” 눈물이 크렁크렁해진다. 금방이라도 흐를 듯하였다. 부모는 이혼한 상태이며 아버지는 어딘가에서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양육비를 보낸 적도 없고, 어머니는 어디에서 사는지 조차 모르며, 시골 친조부모 댁에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동생은 그냥 둔 채 혼자서 수원의 고모댁으로 가게 됐다는 것이다. 이사라고 말 할 수도 없는 해체가정의 어린 학생의 슬픔을 들었다. 이메일 주소를 받아들고 문을 나가는 어린 소녀의 마음은 과연 무슨 색깔일까!
전교생이 300명인데 20%나 되는 60여 명의 어린이가 결손가정이다. 그 중에서 조손(祖孫)가정 학생이 22명이나 된다. 다른 시골 초등학교도 거의 비슷한 형편이다. 옛날에는 떨어진 옷들을 많이 입었었다. 군데군데 기워서 ‘품바’의상 같은 옷이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가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은 떨어지는 옷이 없다. 철이 바뀌어도 쉽게 옷을 바꿔 입지 못하는 애들도 떨어진 옷을 입지는 않는다. 옷감이 좋기 때문에 쉽게 떨어지지만 않을 뿐이지 아주 낡은 옷을 입고 다니는 학생이 많다. 그러기에 결손가정, 기초생활대상자 자녀들의 어려움을 옷차림새만 보고는 알 수 없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서 대화를 나눠보지 않으면 그들의 형편을 알 수없다.
3000억 달러 가까운 수출이나 2만 달러 이상의 1인당 국민소득 등 경제적 수치는 화려하다. 98년 IMF의 폐허 위에서 이룬 실로 엄청난 재기이며 국가적 부흥이다. 이런 경제성장의 혜택이 정말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여 기초생활 이상의 생활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데 미치도록 해야 한다.
삶이 어려운 사람들은 새해가 되어도 새해를 느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뀌는 해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장엄한 일출을 보아도 별 감동을 갖지 못하고 새로운 다짐도 바람도 기원도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외풍을 막기 위해 출입문을 없애버려 화재가 난 집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고인이 되어버린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는 그런 사고가 없도록 국가적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