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생님이 좋아요"

2006.01.07 08:10:00

지난 12월 29일(목요일) 겨울 방학과 동시에 새학기 반 편성과 담임이 배정되었다. 내가 일년동안 맡게 될 반은 2학년이었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교무부에서 나누어 준 학급 명렬표를 받아 들고 대충이나마 아이들의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확인결과 남학생(6명)과 여학생(25명)모두 합해 29명이었다. 지금까지 담임을 연임하면서 이렇게 적은 수의 학생들을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저출산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학교 현장에서 직접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방학식이 끝나고 아이들은 전(前)학년의 담임선생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신(新)학년의 학급을 확인을 하고 난 뒤, 새로운 반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종례는 새로운 담임이 해주라는 교장선생님의 지시가 있었다. 담임으로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가르쳐 본 적이 없는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설렘 그 자체였다.

교실 문을 열자 이상하리 만큼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했다.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건 ‘일년동안 자신들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줄 담임선생님으로 어떤 분이 들어 오실까?’하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는 탓이라 여겨졌다. 아이들의 시선은 나의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이 되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크게 써주며 말을 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일년동안 여러분을 이끌어 갈 담임 OOO입니다. 잘 부탁해요.”

그런데 내 첫인상이 무섭게 보였던 탓일까? 아이들은 내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서로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은 선배들로부터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속삭이기도 하였다.

우선 아이들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 간단한 자기 소개와 다짐, 선생님께 하고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였다. 혹시라도 먼저 하겠다는 희망자가 있으면 시키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없었다. 할 수없이 남학생부터 발표를 하게 하였다. 그리고 나는 칠판에 그럴듯한 주제를 써놓았다.

“오늘의 주제: 저희들은 이런 선생님이 좋아요.”

발표를 하는 동안 아이들의 특성과 요구사항 등을 교무수첩에 적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수줍어 자신의 의사 표시를 잘 못하는 아이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기가 생겼는지 너무나 말을 잘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아이들이 바라는 담임 상(像)이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선생님과 싫어하는 선생님을 비교해 가며 일목요연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가기도 하였다. 한 여학생이 싫어하는 부류의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에는 내 자신이 그 내용과 딱 들어맞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였다. 아이들의 발표는 교사로서 그동안 모르고 지내왔던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았다. 물론 아이들의 이야기 중에는 얼토당토아니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몇 가지 내용들은 눈 여겨 볼만한 것들도 있었다.

- 편애하지 않는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 성적을 공정하게 평가해 주세요.
- 저희들과 함께 식사를 해주세요.
- 저희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세요.
- 수업을 재미있게 해주세요.
- 인사를 잘 받아 주세요.
-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하는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 저희들과 대화나 상담을 자주 해주세요.
-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 저희들을 누군가와 비교하지 마세요.

신년 새해, 다른 어떤 계획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먼저 실천해 가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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