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사립고등학교의 신입생 배정거부에 쏠려 있던 어제(7일) 오후 2시 예정대로 전·의경 부모와 전역자 등 4백50여 명이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아들들인 전ㆍ의경들이 불법 폭력시위로 고통 받고 있다며 폴리스라인을 지키는 평화시위 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호소했다. 또 기자회견을 마치고는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사 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까지 1.2킬로미터를 행진하면서 불법 시위 추방을 요구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어느 부모나 같은 마음이다. 당사자인 자식에게야 남자는 국방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아직은 왠지 철부지 같아 불안해하고 못미더워한다. 그래서 자식 군대에 보내놓고 편히 발 뻗고 자는 부모도 없다.
그때 나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공군을 자원입대한 제 형과 달리 몸도 나약하고, 요리조리 군에 가지 않을 연구만 하는 둘째를 오히려 최전방의 철책선으로 보내 대한 남아의 기백을 키워주는 게 훗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계획했던 대로 둘째는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 했다.
그런데 훈련이 끝날 무렵 컴퓨터 추첨에 의해 전투경찰로 선발되어 중앙경찰학교로 훈련을 들어가게 되었다는 부대장의 연락을 받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전방으로 보내려던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전투경찰이 된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 전반에서 각종 시위가 많다는 게 문제였다.
끓어오르는 혈기를 발산해야할 젊은이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의무를 다하느라 데모 현장에서 고생하는 모습만 떠올랐다. 더구나 데모 진압을 하다 부상을 당하는 모습이나 종종 내무반 사고로 전경과 의경이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발 뻗고 편히 잠잘 부모가 어디 있는가?
매스컴을 통해 영화에서나 본 로마병정 차림의 전투경찰들이 데모 현장에서 매를 맞으면서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본다. 공매를 맞으면서 자리를 지키는 데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데모대에 의해 대열이 흐트러졌다면 누군가 책임을 질 것이고, 그 책임이 결국은 내무반 사고로 이어져 꽃다운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아닌가?
다행히 우리 아이는 전경대가 아닌 경찰서로 배치되어 2년여의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만나는 전경들이 다 내 자식 같아 안쓰러웠다. 청와대로 견학을 갔던 날은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시위현장이 있어 전경대원들이 점심 먹는 모습을 차안에서 지켜봤다. 집에서는 모두 귀여움 받을 아이들이건만 그 더운 날 차 옆에 만들어진 손바닥만한 그늘이 전부였다. 그때 나는 우리 앞에 놓인 여러 현안들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서로 목소리를 낮추며 대화로 해결해 젊은이들끼리, 민관이 서로 대치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을 ‘데모 현장에서 매 맞는 전경도 다 내 자식이다’는 글을 써 사람들에게 알렸었다.
쌀 비준안 통과에 대해 시위 중이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용철, 홍덕표씨의 사망 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밝혀지며 책임이 고스란히 경찰에게 돌아오자 경찰은 물론 전ㆍ의경 부모들이 직접 나서 ‘우리 아들들이 무슨 죄’냐며 일방적으로 죄인취급 당하는 현실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면서 전ㆍ의경의 권익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열렸던 제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 한국원정시위대의 시위상황을 전하는 세계 언론들의 기사 제목이 '韓戰暴發(한국전쟁 발발)'이었다. 시위대의 발길질 한 번에도 놀라는 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1일 홍콩에서 있을 한국시위대의 재판 결과를 지켜보는 정부나 국민들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고, 현재 전국에는 4만 7천여 명의 전ㆍ의경(지원자인 의경 : 약 3만여 명, 육군 입영 후 전환 복무하는 전경 : 약 1만7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중 지난해 시위현장에서 다친 전ㆍ의경 수가 747명(중상 138명ㆍ경상 609명)에 이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죽창, 쇠파이프, 화염병을 치밀하게 준비하거나 보도블록을 깨서 던지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우리나라의 시위문화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농심(農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뿌린 대로 거두는 땅만 바라보며 살던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야 할 만큼 절실했다는 것도 안다, 농심(農心)이 천심(天心)이라고 하는데 순진한 농민들이 길거리에서 죽어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시위도중 사고를 당한 농민들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농민들의 시위를 심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방석모의 철망을 뚫고 들어온 죽창에 눈을 찔려 실명하거나 쇠파이프에 팔다리가 부서지고 코뼈가 주저앉은 전ㆍ의경들이 많은 현실에서 방패를 휘두르는 것은 대각선으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다가오는 시위대를 막아내고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게 우리 국민들이 겪어야 하는 슬픈 현실이다.
과격시위와 과잉진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숫자나 힘이 우선시 되는 물리력 위주의 폭력시위가 법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평화시위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정부에서도 시위가 벌어진 후 대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국민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과격해진 시위 문화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이때 집행부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개인행동이나 불법행위 또는 불법 집회용품을 반입하는 시도가 포착될 시에는 바로 현장에서 제압하여 해당 경찰관서에 집회시위와 관련된 법률로 사법처리를 요청할 것, 아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대화하지 말 것, 집회 참석자들이 버린 것이 아니더라도 행사장에 있는 쓰레기는 모두 수거할 것 등을 공지하면서까지 ‘시위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ㆍ의경 부모와 전역자들의 모임에서 많이 노력했음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다.
2001년 8월에 개설되어 현재 회원이 6만 4천여 명이나 되는 전의경 그들의 삶!(http://cafe.daum.net/ap1004)에는 전의경과 부모님들의 삶은 물론 시위진압 사진과 시위동영상이 게재되어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2년이라는 기간을 전ㆍ의경으로 복무하며 시위대와 맞서야 하는 고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2005년 5월에 개설되어 현재 3천여 명이 가입되어 있는 전의경 부모의 모임(http://cafe.daum.net/ParentsPolice)은 부모님의 이야기, 아들의 이야기, 시위진압 관련 사진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식을 전ㆍ의경에 보낸 부모님들이 얼마나 애간장을 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중 부모님의 이야기에 올라 있는 수채화님의 글을 읽어보면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애달픈 마음과 그들이 왜 이 추운 겨울날 집회를 열게 되었는지를 쉽게 이해한다.
아들을 논산훈련소에 남겨놓고 돌아서지 못 하고 캄캄한 밤이 되도록 훈련소 담장을 돌며 안쓰러워 펑펑 울었던 우리 부모의 살첨 같은 아들입니다.
몽둥이에 맞아 팔다리가 부러지고 죽창에 찔려 눈을 실명하는 위험한 근무를 하면서 무더위에 땀 흘리고 추위에 동상이 걸리도록 춥고 힘들어도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듣기는커녕 폭도로 몰려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다리만 부러져도 방송마다 난리가나고 전ㆍ의경들은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도 지나는 강아지 다리 부러진 듯 모른체합니다. 우리 전ㆍ의경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부모님들이 알려야 합니다. 열심히 군 복무하는 착하고 씩씩한 우리의 아들들 이라는 것을요.
8.15 광복절에 공무원인 남편이 아침식사와 나왔던 음료수를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아들은 찾았지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전해주지도 못해서 애를 태웠답니다.
한 번 더 보고 싶어 지나는 척 다시 그 앞을 지나는데 우비 속에 줄줄 흐르는 땀을 보며 대신 서있고 싶었을 만큼 금쪽같은 우리 아들들이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나요. 전의경도 사람이란 것을 내일 우리가 알립시다.
「농민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농사꾼의 자식이니까요. 하지만 의경들도 정복을 벗고 방패만 내리면 옆집 사는 동생과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들이라 생각하시고 쇠파이프와 죽창을 제발 그만 거둬주세요.」
전의경 우리고운 아들들(http://cafe.daum.net/arbang1003)의 메인 화면에 있는 ‘의경 어머니의 애끓는 하소연’이 자식을 전ㆍ의경에 보낸 부모님들의 가슴을 울린다. 또 왜 우리나라의 시위문화가 평화적이고 계획적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올 한해는 폭력시위가 추방되고 폴리스라인을 준수하는 즉 평화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는 집회가 이뤄지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가 다양하게 변화하다보면 개인이나 단체 간에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게 얽히게 되어있다. 그런 것을 슬기롭게 해결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교육이 해야 할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자기주장이 강한 대신 양보심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을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사회를 살아가야 할 어린이들이지만 먼저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남을 배려하는 삶을 행동으로 실천한다면 살기 좋은 사회가 이룩된다는 것을 가르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