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지력을 스스로 시험하다

2006.01.09 10:58:00

1994년 4월15일, 나는 고양시내에서 두 번째 학급수가 많다는 일산초등학교의 교감으로 전근이 되었다. 주변에선 6학급짜리 작은 학교에 있다가 큰 학교에 가니 영전이라고들 하였지만, 개인적으론 큰 숙제를 안고 가는 것이어서 그리 기쁘지만은 않았다.

사실 전근을 가는 곳의 교장선생님은 내가 교사시절에 모셨던 분이었다. 그랬던 교장선생님이 정년을 1년 남겨두고 좀 도와달라고 하셨고 나는 교장선생님을 잘 모셔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그 학교에 가게 됐다.

어쨌든 나는 4월 15일에 발령을 받았고 환영회라는 것도 하게 됐다. 교직원 수만도 70여명이 넘다보니 술자리는 많았고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됐다. 하지만 사람이란 역시 적응하기 마련인가보다. 금세 술에 익숙해지고 제법 마시는 술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듬해 2월말이 되어 떠나는 선생님들의 송별회는 하는 날까지 무려 11개월 15일 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송별회가 있었던 날, 나는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가지 약속을 하였다.

"3월 1일부터 45일간(내가 발령 받은 1주년이 되는 날까지) 동안은 나는 금연, 금주, 금코(커피)를 실천하겠습니다. 그리 아시고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내 말을 들은 교장선생님은 "왜? 무슨 이상이라도 생긴 거야?"하고 물으셨고,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아닙니다. 전혀 이상은 없습니다"했더니, 다시 "정말 자신이 있어? 그걸 지킬 수 있단 말이지? 그게 지켜질까?"하고 놀림 반, 장난 반으로 물으셨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나의 마음을 더욱 굳게 다지면서

"건강상의 문제라거나 어떤 주의를 받는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저의 의지력을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45일 동안만이라도 이런 기호식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할뿐입니다."

내 말을 들은 교장 선생님은 물론 부장교사들도 동료 교감선생님도 모두들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공언을 한 이상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지켜 본 70여명의 직원들은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못한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발령을 받아서 환영회를 하던 날 "교감선생님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십니까?"하는 질문을 받고서 나는 거침없이 "두 가지만 빼놓고서 무엇이든 잘 먹습니다"했더니 그 두 가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무고개 식의 질문이 계속 되었다.

한참 동안을 계속되는 질문에 모두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자 모두들 "교감 선생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과연 그게 무엇인지 이제 지쳤어요. 가르쳐 주세요"하기에 나는 한 참 뜸을 들이다가 "그게 뭣이냐 하면 첫째는 없어서 못 먹고, 둘째는 안 줘서 못 먹습니다" 했더니 때굴 구를 듯이 웃어대면서 야단들을 했었다.

그런 사람이 안 먹겠다는 것이 나온 것이다. 더구나 그 순간까지도 나는 단 한 번도 주는 술잔을 거절하거나 뒤로 미루는 일이 없을 정도로 주는 대로 퍼 마셨었다. 다들 술을 아주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고 또한 술을 아주 잘 마시는 사람인데 어찌 참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더욱 마음을 다졌다.

'흠, 다들 나를 우습게보고 있구나. 두고 보라지. 나는 꼭 지키고 말 테니까.'

3월2일 새 학년이 시작되자 정말 날마다 술을 먹을 일만이 생겼다. 환영회, 학년 별 단합대회, 부장단합대회, 또 무슨 단합 모임 등등에다가, 학부모 모임, 운영위원회 조직, 총동창회 간부회의, 동문 운동회, 이렇게 날마다 모임이 계속 되었고 모이면 술자리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정말 나에겐 곤역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했기 때문에 금연, 금주, 금코를 선언한 것이었다. '이렇게 모임이 많고 술자리가 빈번한 시기를 45일 동안 내가 정말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 속에 나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간이지만 내가 이것 정도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엇은 할 수 있겠는가?'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바로 이런 순간을 택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가장 술자리가 많을 시기에 이것을 참아보자는 것이었으니, 결심치고는 참 어리석은 결심인 셈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정도는 이겨낼 자신이 있다고 한 약속이었고 결심이었다.

더구나 나는 여러 사람에게 공언을 하였다. "내 책상 위에는 담배와 라이터를 놔두고 살면서도 금연을 할 자신이 있다"고 큰 소릴 친 것이다. 그래서 정말 책상 위에 라이터와 담배, 그것도 개봉을 하여서 피우다 둔 것이어서 언제라도 손만 대면 담배를 뽑을 수 있는 상태로 놓아두었다. 손님이 오면 자연스럽게 내드리곤 하였다. 다른 사람이 보아서는 내 자신이 금연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3월10일경이 되자 이제는 본격적으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무슨 모임이 그리 많은지 날마다 술을 먹어야할 자리는 생겼다. 더구나 새 학기가 되자 외부 인사들의 방문이 잦아져서 거의 날마다 점심을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 무렵에는 학교 급식이 없어서 점심을 사 먹던 시절이었기에 한사코 빠지려고 해도 빠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일부러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보기도 하였지만 날마다 다시 집으로 가져오게 되는 일이 되풀이되자 집에서도 더 이상 도시락을 싸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날마다 점심에 반주라고는 하지만, 술잔이 오가는데 단 한 모금이라도 마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유혹과 권하는 술잔을 물리치고 드디어 45일을 채웠다. 정말 4월 15일이 되자 교장선생님은 "내가졌소. 정말 45일 동안을 그렇게 지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말 지독한 사람이구려"하시면서 나의 45일 금주, 금연, 금코가 성공하였음을 인정하고 축하하시면서 "오늘은 이제 45일이 다 지나서 충분히 증명이 되었으니 약속대로 술을 한 잔 마시는 겁니다"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셨다.

그날 술자리의 술잔은 나에게 집중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금연, 금주의 약속이 끝난 바로 그날 술을 엄청 마시게 되었다. 하긴 뭐 그래 봐야 겨우 두 병정도 이니까, 사실은 지난날 한참 마시던 시절의 절반 수준 정도이긴 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나는 스스로 의지력으로 이기겠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나의 의지력으로는 어떤 유혹이라도 물리칠 수 있고, 어떤 일이라도 마음먹으면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기회에 얻은 자신감은 어쩜 나의 인생의 여러 문제들을 차분하게 참으면서 이겨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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