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나를 돌아 본 시간

2006.01.17 11:22:00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이유없이 교사를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특히 감성적으로 민감한 여고생들은 특히 그런 부분에서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혹은 마음 속 깊이 숨김으로써 갈등을 빚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첫발령을 받고 여고생들로부터 총각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사랑은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면서 수업 시간이 여타 시간에 알 수 없는 싫은 감정을 보내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싫은 사람, 좋은 사람 다 만나게 된다. 이런 점을 인정하면서도 혹시나 그런 감정으로 학교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재미 없어진다면 그것은 곧 아이들 개인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기에 교사로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학생 시절로 되돌아 가보면, 선생님과의 관계가 필시 좋지 못하다면 이는 곧 성적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지라 더욱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 좀 일어나거라.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종일 자냐. 제발 부탁이다 눈 좀 뜨거라.”

아이는 나의 말이 성가시기라도 한 듯 못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하지만 이내 곧 책상에 엎드리고 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아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조금 피곤하고 졸립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도대체 반성의 기미라곤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자는대로 놔두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그냥 덮어두고 가는 것이기에 교사로서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 아닌 상담을 요청하게 되었다.

“선생님, 시간 좀 있으세요. ○○ 때문에 할 이야기가 좀 있었어요.”
“○○ 때문에….”

선생님은 ○○이라는 말에 조금 꺼려하는 표정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선생님 ○○ 때문에 조금 힘드시죠.”
“어, 선생님도 그럼….”
“저도 처음에 ○○ 때문에 조금 힘들었죠. ○○이가 하도 막나가는 행동을 보이니까 저도 적응이 안 되더라구요. 물론 지금도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왜 그런답니까, 정말로 그 아이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는데,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아서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선생님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그냥 ○○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고 노력하세요. 저도 처음에 ○○이가 막나가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정말 어려웠는데, 조금씩 밀고 당기면서 타협점을 찾아갔어요. 물론 지금도 과정에 있지만.”
“이제까지 교직 생활 해 오면서 그렇게 접근하기 어려운 아이는 처음이에요. 정말 어디에서 그 아이와의 불화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도 별 뾰족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말 밖에는 별 속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아이와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점심 먹고 시간 좀 내라. 선생님 할 이야기도 있고 해서….”
“알았습니다. 선생님.”

“점심 맛있게 먹었나.”
“예, 선생님”
“오늘 선생님 너를 부른 건 아마 너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예, 저번에 제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 제대로 듣지 않은 것 때문에….”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 이전에 내가 이제까지 수업 시간에 나를 대하는 태도를 선생님이 때때로 너무 이해하기 힘들어서….”

아이는 그냥 나의 말에 잠자코 듣기만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도 마음에 들지 않니.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한다고 하는데. 그리고 네가 보듯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잘 따라 주잖아.”

아이는 나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가 그렇게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뭐 개인적인 감정이라 뭐라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공부까지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겠니.”
“예, 선생님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모든 것이 싫어요….”

아이는 그제서야 한 마디 힘없이 하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더 이상 아이와의 대화를 진행하기 힘들었다. 이내 종이 치고 아이를 보냈다.

이후에 들어간 수업시간에는 이전보다는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그 아이의 눈빛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그럭저럭 지금까지 시간이 흘러왔다. 보충 시간에도 여전히 그 아이는 나름대로 자리를 열심히 지키려 했고, 나 또한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가르치려 노력했었다.

보충이 끝나고 일년 동안 함께 했던 아이들을 떠 올려본다. 유독 그 아이가 마음에 걸린다. 마음 한 구석을 자리자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 때론 너무 생생하게 떠 올라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다.

때론 교사로서 겪는 이런 아이들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 피하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자리는 결국 아이들한테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곤 쓴 웃음을 지어 버린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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