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있어 승진은 무엇인가

2006.01.31 13:40:00

방학 중이라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학교에 나갈 일이 없다. 하지만 고3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을 맡고 있는지라 혹시나 몇몇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는 지 싶어 나가게 되었다. 보충수업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뒤라 몇 명의 아이들이 교실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 방학인데 집에서 좀 쉬지, 이렇게 추운데 학교 나와 공부를 하고 있니. 춥지 않아.”
“선생님도 참, 언제는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라고 하시더니 무슨 딴 말씀이세요.”

아이가 도리어 나를 타박하는 것이었다. 물론 속 마음이야 학교에 다 나오라고 하고 싶지만, 방학이라 함부로 학교에 나오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고3이라는 것을 핑계로 방학전에 되도록이면 다들 학교에 나와서 정말로 자발적으로 공부하자고 반강제적인 압력을 가한 적은 종종 있었다.

“그래 미안하다. 선생님이 별 도움도 되지 못하고.”
“건데, 선생님은 학교에 어쩐 일이세요. 보충수업도 끝났잖아요. 그리고 오늘 일직 선생님도 아니신 것 같은데….”
“선생님도 공부하려고 나왔다. 너희들이 이렇게 방학도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데, 선생님이라고 집에서 놀 수 있냐. 더 열심히 해야지.”
“선생님도 공부하세요?”

아이의 엉뚱하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아, 선생님들은 너희들 그냥 가르치는 줄 아니. 너희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너희들 잘 가르칠 것 아니냐.”
“농담입니다 선생님. 대학 때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시고, 그리고 어려운 시험도 통과하셨는데 굳이 또 공부하실 필요가 있나요.”
“공부가 끝이 있니. 너희들도 지금 하고 있잖니.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이잖니.”
“그건 맞아요…. 아 참, 선생님도 빨리 교감 선생님 되셔야죠.”
“그게 무슨 소리고 뜬금없이….”
“아니, 빨리 승진하셔야 편할 것 아네요, 그리고 봉급도 많이 받고….”

가끔은 아이들이 교무실에서 책을 보거나 뭔가 열심히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곧잘 ‘선생님도 빨리 승진하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거죠’라는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그 때마나 묘한 기분을 느끼곤 했었다.

고등학생들인지라 제법 세상 물정을 한다손 치더라도 교재 연구나 대학원 관련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대단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이 바라보는 그런 아이들의 시선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론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서 어떤 모습을 보았길래,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는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교사가 되려고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기 전에, 그러니까 대학 초년병 시절에 우연하게 교육관련 공무원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시간과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교사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었다. 그리고 현재 교사로서의 길에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교사에게 과연 승진이란 뭘까. 교직생활 8년 동안 주위를 스쳐간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승진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봤지만 아직은 몸소 느낄만한 처지도 못되고, 그리고 승진에 벌써부터 목숨을 거는 입장도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종종 주변에 승진을 목전에 두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뵈면서 ‘정말로 교사에게 승진이 그렇게 중요할 것일까’라는 생각을 한 적은 종종 있었다.

“선생님, 승진을 꼭 해야 합니까. 주변에 보면 승진을 포기하시고도 아이들과 재미있게 그리고 주의 선생님들이나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으시는 선생님들도 계시잖습니까?”
“서선생은 아직 젊잖아. 나이 들어봐, 아이들이 좋아하겠어. 나이든 할아버지 선생님 들어온다고 구박부터 할 건데. 생각만 해도 끔직해. 그리고 겉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누가 제대로 대우나 해 주겠어.”
“그래도 선생님, 교사가 아이들과 이렇게 열심히 부딪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말고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로 서선생님 말이 맞아.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런 분위기를 이상적으로 삼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잖아….”

승진을 목전에 앞둔 한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승진을 해야만 그래도 인정받고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반 자조섞인 말씀을 하시고는 우리 교육의 서글픈 현실을 내내 안타까워 하시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보니, 과연 ‘교사가 아이들과 마주하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의미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수업을 하지 않고 교사로서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문제와 결부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즈음 곧잘 수석교사제라는 또 다른 교사 승진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행정 편의주의적, 우월적 발상에서 나온 전근대적인 제도인 현재의 교육행정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좋은 제도라는 판단이 든다. 특히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고, 그리고 그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접근해야만 교사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면 수석교사제도는 그 시행을 늦출 수 없는 좋은 정책이라는 판단이 든다.

교사는 정말로 아이들과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지극히도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 교육 현실에서의 교사들의 자리이다. 그 힘든 자리가 헛되지 않는 그런 교육행정 제도의 뒷받침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승진에 목숨 걸 수밖에 그런 우리의 교육현실과 겹치면서 머리를 복잡게 했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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