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적 배려 아쉬운 언론보도

2006.02.01 20:08:00

최근 ‘발바리 사건’이 화두로 떠올랐다. 경찰과 언론에서 처음 사용한 ‘발바리’란 말은 개처럼 날랜 동작으로 요리 조리 발발대며 경찰의 추적을 교묘히 따돌리는 범인의 신출귀몰함을 빗댄 표현이라는 설명도 있고, 예쁜 여자들만 밝히며 집적거리는 만화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어원이야 어찌되었든 듣기에도 끔찍한 천인공노할 연쇄 성폭행범을 보도하는 언론은 이른바 ‘대전 발바리, 후배 발바리, 원조 발바리’ 등 애완용 강아지로 희화화하면서 ‘탈옥수 신창원 사건’ 때처럼 범죄 대상, 시간, 방법은 물론 경찰의 치안망을 빠져나가는 방법까지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범죄의 본질과 심각성을 가림은 물론 모방심리가 강한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우려를 낳고 있다.

사건자체만 부각시키는 ‘단순사실’ 보도와 사건본질과 교육적 측면은 외면한 채 ‘왜곡’ 보도를 일삼는 우리 언론들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최근 사회적으로 만연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방범죄를 더욱 자극하고 보편적 사회가치를 변질시키는 역기능을 더욱 양산하는 처사이다.

최근 사건, 사고를 재연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는 모방송사의 프로그램은 첫 회부터 PC게임에 미쳐 친동생을 살해한 14살 소년을 시작으로 중풍에 걸린 노모를 고려장 한 30대 아들의 이야기, 여대생 영아유기사건, 열다섯 살 티켓다방 소녀, 할아버지 사기단, 친구 살해사건까지 매회 마다 살인, 사기, 성매매, 패륜 등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이 주요 사건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범죄수법과 정보를 너무도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잠재적인 모방범죄 수법을 학습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현대인에게 TV와 인터넷은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있다. TV와 인터넷을 보면서 많은 지식을 얻기도 하며, 사회의 흐름을 진단하는 등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의 가치관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TV나 인터넷에 나오는 어른들을 보고 미래의 자신을 꿈꾸기도 하며, 그들의 이야기들을 맹신한다. TV를 보거나 채팅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더 머리에 잘 들어온다는 아이들도 있고 출연한 연예인들의 복장, 액세서리, 헤어스타일, 유행어는 순식간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병처럼 번진다.

실제로 TV에서 본 방법대로 하고 싶다며 자는 동생을 손도끼로 살해한 사건이나 핸드폰수능부정, 연쇄살인, 연쇄방화, 사제폭탄제조 등 수많은 범죄사건이 모두 TV나 인터넷에서 배워 그대로 옮긴 모방범죄였다. 또한 TV 보도나 음란영상물을 흉내 내 중학생이 동네 초등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는가 하면 남녀 초등학생들이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행위를 하며 동영상 촬영을 시도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 모두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단순한 모방심리와 호기심으로 저지른 `모방범죄'로써 TV와 인터넷이 엄청난 사회적 파급효과를 가진 사회문제의 온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맹자의 모친이 어린 아들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다닌 것도 학교 울타리 밖이 또한 학교였기 때문이다. 사회는 곧 ‘학교 밖의 또 다른 학교’이며 교실 안에서 주입된 가르침은 교실 밖에서 검증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실 밖의 우리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TV와 인터넷이 폭력과 힘의 논리를 용납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보니 어릴 때부터 길들여져 어지간한 폭력에는 무감각해지는 불감증에 걸리게 하고 있지 않는가.

언론이 모방범죄 수법을 학습하는 역기능을 함으로써 오히려 매스컴보다 보다 더 자극적인 내용을 찾으며 때로는 모방범죄로 실천에 옮기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한 사회가 이렇게 거대한 비교육과 반교육의 ‘타락한 교실’로 변질되면, 아이들도 그 비교육과 반교육을 보고 배우며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발 빠른 보도를 통해 유사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 또한 언론의 중요한 순기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만한 선정적이고 잔인한 각종 범죄사건을 여과 없이 재현 보도하는 것을 좀더 심사숙고함으로써 ‘학교 밖의 또 다른 학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을 위한 언론들의 교육적 배려와 각성이 요구된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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