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에 있는 신호분교(이듬해에 흥양국민학교가 됨)에 처음 발령을 받아서 첫해에 담임을 하였던 당시 2학년 제자입니다. 항상 예의 바르고 너무 선생님을 잘 따르던 2학년 어린아이였던 주인공 송애심양(아줌마가 되어 있겠지만)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니 연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월 15일에 발령을 받고 담임을 맡은지 3주일쯤 지나서 그러니까 4월 초였겠지요. 너무 어려운 학교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칠판 지우개가 다 떨어져서 속에 넣은 솜이 삐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칠판을 지우다가 솜을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서 간신히 칠판을 지웠습니다.
이튿날 아침 교실에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는 시골에서 칠판 지우개를 살 수도 없고, 또 그만큼 경제적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정성을 들여서 어머니가 직접 칠판 지우개를 만들어 보내 주신 것이었습니다. 물론 정식 지우개 형식이 아닌 어린 시절에 만들어서 쓰던 유리창 닦기 처럼 만들어진 칠판 지우개가 4개나 칠판 틀에 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들어진 솜씨로 보아서 두 집에서 각각 두개씩 만들어 보내준 것이었습니다. 한 쌍은 골덴 천으로 제법 격식을 차려 만들어 졌고, 다른 한 쌍은 그냥 면으로 된 것인데 유리창 닦기를 좀 크게 만들어 놓은 모양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날의 감격을 정년을 며칠 앞둔 오늘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어린 2학년 어린이들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칠판닦기가 떨어져서 못쓰겠다는 말을 하거나, 누구에게 만들어 오라고 한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만들어 온 것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이 선생님이 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졸랐으면 논밭에서 종일 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그 칠판 닦을 것을 만들었겠는가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학년 초가 되면 꼭 가정방문을 다녔습니다. 병아리 교사인 나는 선배님들의 주의 말씀을 듣고 나서 가정 방문을 나섰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선생이라는 신분으로 학생의 집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정에 가면 그 집의 청소 상태와 댓돌위의 신발이 놓인 모습, 그리고 화장실<그 당시에는 뒷간이라야 맞는 시절>을 보면 그 집의 하고 사는 모습과 가정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고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정 방문을 나가서 두 집을 거쳐서 찾아 간 집이 바로 이 주인공의 집이었습니다.
농촌 마을의 골목을 지나서 집에 들어서려는데 다른 식구들은 밥상을 받고 늦은 점심을 드시고 계시는데, 이 주인공은 고사리 손으로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골목을 돌아 설 때에 어머니가
"먼지난다니까, 얼른 와서 밥을 먹고 치우고 나서 쓸어라."고 불러대었지만, 아이는 "이제 쪼끔 남았어요."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집에 들어섰습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달려와서 인사를 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학교에서 오자 마자, 오늘 선생님이 오신다고 저렇게 밥도 먹지 않고 마당 청소를 하기에 밥을 먹고 하라고 해도 선생님이 청소가 되었는지 보면 그 집을 알 수 있다고 했다면서 저렇게 고집을 숙이고 기어이 다 쓴다고 저러고 있답니다."하는 얘기를 들었었다.
이렇게 무슨일이나 열심히 잘하던 그 까마득한 옛날의 제자를 찾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불로그에 제자가 들어와서는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이름도 쓰지 않고 제자라고만 적어 놓았었고 , 얼마 후에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이름을 밝혀 놓았었지만, 연락처가 없고 이메일도 안 되어서 연락을 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달 말이면 42년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몸담았던 교직에서 정년으로 물러나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발령 첫해에 맡았던 제자가 글을 남기고는 있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본인이 이 글을 읽으면 연락이 될 수 있을 것이니 더 좋고, 다른 사람은 알 수 없겠기에 여기 사진을 올려 놓으니까 아시는 분은 연락이 되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