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 새로운 출발

2006.02.10 21:09:00

세월이 남긴 나이테가 하나 더 늘었다. 이번까지 3학년 담임만 여섯번째니 그간 내 손을 거쳐간 녀석들만도 족히 기백명은 넘을 듯싶다. 한 이불 덮고 사는 부부도 미운정 고운정이 알맞게 들어야 금실좋다는 얘기가 있듯 스승과 제자 사이도 적당히 밀고 당기며 속도 어지간히 태워봐야 서로의 필요성을 절감하는가 싶다.

작년 이맘 때쯤으로 기억된다. 졸업식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사실상 고3과 다를 바 없는 너희들과 첫대면을 했지. 다른 담임선생님들처럼 아이들의 명단이 담긴 봉투를 선택할 권리도 없이 내가 맡게 될 반은 이미 정해져 있었단다. 공부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처럼 다른 재능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을 모아놓은 혼성학급이었지.

처음에는 공부와 거리가 먼 녀석들이 있어서 걱정을 했으나, 그런 대로 담임의 말을 믿고 따르는 모습에 한시름 놓았단다.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숨돌릴 틈없이 이어지는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으로 인해 특별한 추억거리를 만들 여유가 없었으나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구나. 교내 체육대회 때, 전력상 절대 열세라는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농구 경기에서 결승전까지 올랐을 때였지. 매경기 혈전을 치르느라 ‘부상병동’으로 변한 우리반 선수들은 결승전에서 패배 일보 직전까지 몰렸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하여 막판 역전극을 펼칠 때의 그 감격, 아직도 생생하구나.

그런 정신력이 있었기에 대학진학도 비교적 순조로웠던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한 경쟁률(120:1)을 극복하고 우리반에서 가장 먼서 합격 소식을 전해온 민기, 컴퓨터 게임에 빠져지내다 결국 컴퓨터학과에 진학한 동훈이, 장차 멋진 비행기를 몰겠다며 항공학과에 진학한 용훈이,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경호학과에 진학한 상범이 등 대부분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구나.

유난히 자존심이 강해 담임에게 조금만 서운한 말을 들어도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울던 완섭이가 서울대에 원서를 넣고 하루하루 불안 속에 기다리던 나날들. 합격자 발표일이 되자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예배당에서 기도드리고 있을 때였지. 순간, 주머니를 가볍게 흔들던 문자메시지 한통.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 합격했어요!’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목이 메어와 한동안 답장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구나.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은 더 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그래도 각자 소망했던 목표를 성취하고 떠나는 길이기에 선생님의 마음은 한결 가볍구나. 너희들을 보내는 아쉬움을 표현이라도 하듯 오늘 아침 출근길에 차안에서 듣던 대중가요 한 소절이 떠오르는구나. ‘어울려 지내던 긴 세월이 지나고, 홀로이 외로운 세상으로 나가네~.’

잘가라, 사랑하는 제자들아. 이제부터는 그동안 입시라는 굴레에 갇혀 숨죽이고 주눅들었던 날개를 활짝 펴고 너희들이 바라는 세상을 향해 힘껏 날아보려무나. 너희들이 잠시 머물다 떠난 빈자리는 선생님이 굳건히 채우고 있을 테니까.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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