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료교사들은 식사중이거나 수업 중인지 아무도 자리에 없다. 나는 조용히 막간을 이용하여 나를 생각해본다. 교직생활도 이제 꽤 많이 했구나. 1979년 봄에 교직에 들어섰으니 햇수로 벌써 28년이다, 동갑나기들은 대부분 30년 이상의 경력이다. 이런 저런 사유로 내가 교직에 늦게 입문한 까닭이다.
여덟 명이 사용하는 교무실을 낯선 듯이 여기저기 바라본다. 난초분이 두 개, 하나는 아직도 화사한 꽃을 달고 있다. 선생님들의 책상 위엔 저마다 최신 기종의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다. 언젠가 태평양의작은 섬나라 미크로네시아 아가씨와 인터넷으로 필담을 주고받다가 선생님들 책상마다 컴퓨터가 하나씩 놓여있다고 하니 매우 놀라고 흥미로워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럴 것이다. 우리의 경제사정이 이제 많이 좋아졌고 우리나라를 부러워하는 외국인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앞뒤 가리지 않고 경제발전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문화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외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 우리도 외국에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적 삶의 질뿐만 아니라 환경적 도덕적 삶의 질도 향상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조용히 시선이 한쪽 모서리로 향한다. 거기 탁자 위에 놓인 커피포트며 커피 통, 식기건조함 속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커피 잔들, 이 풍경만으로도 얼마나 풍요로운 모습인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한 잔씩 타서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윤택한 경제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수년 째 가뭄이 든 아프리카, 전쟁이 할퀴고 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의 황폐한 모습을 TV 화면으로 볼 때 마다 안타까웠다. 우리도 이제 굶지는 않게 되었나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청소년기 때만 하더라도 얼마나 쪼들렸던가? 부모님들은 우리를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셨다. 그렇게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밥은 굶지 않게 되었으니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시선이 다시 한 책상의 책꽂이로 향한다. 콜린즈 코빌드(Collins Cobuild) 영영사전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책상 주인의 높은 교양이 엿보인다. 몇 가지 영문 서적, 시집도 서너 권 있다. 김광규 시인의 최근 시집 '처음 만나던 때'도 있다. 김광규 시인은 독문학자로 비판적 주지시를 쓰지 않는가. 엊그제 신문에 보도된 최근 시집이니 출판 정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책을 선택하는 주인의 안목이 돋보인다.
소노 아야꼬 여사의 '중년이후'가 책상주인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천주교 서적과 불교 서적도 꽂혀 있어 주인의 폭넓은 관심사와 생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또 누가 내 책꽂이를 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의 느낌은 또 어떨까.
나는 아무래도 나의 직장과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이 직장, 이 사무실이 나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내 인생의 거의 전부를 투자한 나의 직장이 아닌가. 동료와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살아온 사반세기였다. 직장 생활로 인하여 나의 생활이 윤택하고 교우관계가 밝고 희망에 넘친다.
흔히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성스럽지 않은 노동은 없을 것이다. 이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일은 모두 성스럽고 아름답다.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또 이웃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들어 어금니가 시큰거려 나는 몹시 고심했었다.
내 인생도 이제 서서히 내리막길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빨마저 고장나면 내가 좋아하던 음식마저 씹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상심한 마음으로 치과엘 갔다. 치과의사는 전문가답게 내 고장난 어금니를 진찰하고 적절한 치료를 해주었다. 몇 마디 조언도 덧붙였다. 병원 문을 나서며 나는 치과의사가 정말 고맙고 소중한 이웃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직업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하는 일도 이웃들에게 고맙고 소중한 일이
되어야 한다. 성실하게 이웃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것은 곧 나를 풍요롭게 하는길이다. 동료들은 아직도 식사중이거나 수업중인가보다. 커피 한 잔을 타는데 양란이 옆에서 곱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