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 잠시 자리를 비운 중년의 남자인 김선생님에게
"사랑해요."
"변함없이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을 함께 기뻐합니다."
리본에 글이 새겨진 꽃바구니와 케이크 하나가 교무실로 배달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20여 년 동안 우리 학교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두들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선물을 선사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알고 있었고, 이날 아침 여직원에게 초콜릿을 하나 얻어먹은 기억이 있는지라 일순간 야단이 났다.
"아니? 이걸 누가 보냈지?"
"오늘이 무슨 날이야?"
옆에서 답한다.
"밸런타인데이잖아!"
"그러면 생일은 또 뭐지?"
보낸 분의 이름을 보니 자주 듣던 사모님의 이름이었다. 우연히 오늘 남편의 생일이 밸런타인데이와 일치하였던 것이었다. 워낙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라 한 점 의혹이 없을 텐데, 모두들 시샘이 나는지 좋은 상상력으로 한 마디씩 거든다.
주정뱅이였던 토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쓸 때 하숙집, 전당포 노파 등 주위 배경을 그대로 둔 채, 노파를 죽였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듯이 소설을 써냈다.
"아니야! 김선생은 아무리 성실하고 착해도 술을 좋아하잖아. 술집에 술값 바친 게 얼마인데! 이건 틀림없이 술집으로부터 시작된 뭔가 사연이 있는 거야."
"그렇지. 남녀관계는 아무도 몰라. 꽃 사이에 쪽지나 있는지 확인해 봐!"
"그럼 보낸 분 이름은 뭔가요?"
"그건 말이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위장전술일 수도 있어!"
"그럼 김선생은 술 마시면 약간 엉뚱한 구석이 있다구!"
"아따, 부처님 눈에 부처밖에 안 보이는 법이고, 문제가 있게 보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세대별로 각각 다른 반응이다.
"나는 그런 것 바랐다간 맞아죽어! 꽃바구니 하나에 양말이 몇 켤레인데."(50대)
"난, 마누라 생일 날 꽃바구니 보내려고 했더니 현금으로 달라던데."(40대)
"고생은 내가 하는데 받는 건 몰라도 주는 건 난 못 줘!"(30대)
"부럽네요."(20대)
여기에 약간의 바람둥이 기질이 있은 한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아마 나에게 왔다면 내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을 거야."
또 한 분이 한 마디 거든다.
"나는 꽃집에 내 돈 주고 나에게 하나 보내라고 해야겠다."
당사자가 나타났다. 모두들 모른 척한다. 꽃바구니를 보더니 깜짝 놀라 얼른 아래로 내려놓더니 주위를 한번 슬쩍 둘러본다. 모두들 딴 짓 하는 척한다. 당사자는 약간 안심이 되었는지 조용히 살짝 전화를 건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여보, 고마워!"
이렇게 밸런타인데이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