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까지 고우시던 친구엄마
치매 7년째 혼잣말 길게 이어진다.
풍골만큼 인자하던 약국집아저씨
자식 친구 못 알아보고 천정만 바라본다.
우스갯소리 잘하던 부산아저씨
정신 놓느라 말끝마다 웃음만 짓는다.
명절이라고 고향 찾은 우리엄마
뜨럭 오르내리며 한숨 길게 내쉰다.
고향 더 그리운 나이 되었는데
반겨주던 사람들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어린시절 새록새록 떠오르는데
빛바랜 추억 자꾸 망각의 강을 건넌다.
작년 구정 때 친구 몇이 어울려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다녔다. 그날 가는 세월을 거역하지 못한 채 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어른들의 건강했던 젊은 시절 모습이 많이 남아 있기에 더 안타까웠다. ‘고향유감 2’라는 짧은 글로 아쉬움을 달랬다.
풍골만큼이나 인자하시던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올 구정 때는 병환이 더 심하다고 해 인사를 못 드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공직에 오래 근무하셨고, 자식을 의사로 키운 덕망 있는 분이지만 5년여를 병환으로 고생하셨으니 이제 좋은 곳으로 편안하게 영면하셨으리라 믿는다.
장지가 마침 어린시절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고향 뒷산이라 오랜만에 고향냄새에 흠뻑 젖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풀 뜯기던 소를 말뚝에 매어 놓은 채 나무사이를 뛰어다니며 총싸움을 하고,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면 어지럽게 널려있던 동물들의 발자국을 쫓아 토끼몰이를 하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뛰놀던 때가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
장지 옆에 차려진 술상에서 옛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우시던 친구엄마가 병환으로 고생하신 게 벌써 15년째라는 것도 알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간병하는 자식들은 지치기 마련이다. 병 수발을 하느라 고생이 많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 친구의 형에게 소주잔을 건넸다.
장지와 가까운 산길에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마을의 구석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추억 찾기를 했다. 통장 일을 보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가 자기네 집에서 소주 한잔하고 가라며 손을 잡아끈다. 자리만 옮겼을 뿐 몸 아픈 고향 어른들 걱정, 살포시 숨어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고향의 옛 이야기가 또 이어졌다.
닭 한 마리 잡아달라는 농담을 던졌더니 친구는 집에서 키우고 있는 토종닭을 한 마리 자루에 담아 내차에 실어준다. 술에 잔뜩 취한 것이 고향냄새와 고향의 정 때문이었다고 핑계를 대도 될 만큼 고향을 가슴으로 느낀 날이다.
한편 ‘요즘 아이들은 고향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까?’가 궁금했다. 고향을 알게 하는, 고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육이 바로 나라사랑교육의 밑받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