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가엽지도 않나요?

2006.02.21 20:54:00


학업에 짓눌려 ‘분재’처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분재를 보며

아는 집에 갔더니, 분재 자랑에 침을 튀긴다.
이렇게 잘 가꾼 솔 분재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값이라며……

분명 생화인데 생화 같지 않은,
정일품 소나무를 백분의 일로 줄여놓은 듯한
참으로 훌륭한 작품!
이 정도면 키웠다기보다는 만든 것

“왼쪽으로, 아니 약간 오른쪽으로 구부려---”
“가운데 가지는 조금 뒤틀리게 하고---”
철사에 의해 움직이고 고정되는 나뭇가지
도무지 자연스럽게 숨쉬도록 놔두지를 않는다.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하라는 대로 하는 것
먹으라는 대로 먹고, 크라는 대로 크고,
뻗으라는 대로 뻗고, 보라는 대로 보고……

한 발짝 다가가 분재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우리에 갇힌 야수의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숨 막히는 눈빛 속에서 나는 들었다.
좀 내버려 달라는 우리 아이들의 하늘빛 아우성을!

무조건 뛰어나야 대접받는 세상
옷에다 사람을 끼워 넣는 교육……

장자와 루소가 흘리는 눈물 때문인지
창밖에는 때 아닌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시 : 김형태

분재(盆栽)의 사전적 의미는 ‘수목(樹木)을 분(盆)에 심어 아름답게 가꾸어가며 생활 속에서 보고 즐기기 위한 원예기술의 한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분재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전에 분재에 조예가 깊다는 분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으로부터 ‘분재학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분에 따르면 “분재는 자연의 초목을 분중(盆中)에 재배하여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를 표현하는 예술의 한 장르요, 자연적이 아니면서도 자연의 미를 추구하여 자연을 잃지 않고 인고로 극히 자연스럽게 자연경관을 창작하는 조형예술, 아니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생명예술”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난히 ‘자연’을 강조하더군요.

정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탐스럽고 기품 있고 아름답고 신기한 자태의 분재들이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저도 집에다 이런 분재 하나 키워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분재는 나무와 화분과 공간의 조화가 이루는 종합예술”이라는 그분의 말씀에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이놈처럼 줄기가 곧게 자란 것은 직간(直幹)이라고 하고, 저놈처럼 나무줄기가 휘어져 있는 것은 곡간(曲幹)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것도 곡간이겠네요?”

제가 나무줄기가 마치 용트림하듯 구불구불 구부러져 올라간 분재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아, 그렇게 심하게 구부러진 것은 반간(蟠幹)이라고 합니다. 반간형의 나무는 고색창연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강한 생명력까지 느끼게 하지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나요?”
“아, 그거야 철사걸기를 하면 되지요.”

그러고 보니, 그 솔 분재는 온몸에 칭칭 철사를 감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그 나무가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는 사람 즐겁자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분재들은 과연 행복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더군요.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어 주어도 동물원의 동물이 행복하지 못하듯, 아마 이 분재들도 행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과연 이 분재들이 행복할까요?”

저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는지 잠깐 머뭇거리던 그분은 “그럼요. 때 맞춰 물주고, 영양제 주고, 소독하고, 분갈이하고… 행복에 겨운 나무지요. 세상에 어떤 나무가 이런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그래도… 어디 자연에서만 하겠어요? 하면서 말끝을 흐리더군요.

그 분도 모르지는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분재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뜨겁다 못해, 지나친 부모들의 교육열로 인해, 오늘도 꼭두각시처럼 오로지 공부에 올인해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 방학 중임에도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해야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전, 과도한 학원수강에 힘들어하던 초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중·고생들이 매년 크게 늘고 있어 안타까운 마당에, 초등학생까지 학업 부담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소식은 참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와 전교조 보건위원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 초중고 학생 건강상태와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2.9%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자살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가운데 19.4%가 ‘성적’을 꼽아, 지나친 학업 부담이 초·중·고 학생들을 극단으로 몰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한해 동안 자살한 초·중·고생은 모두 101명으로 지난 98년 이후 매년 80~2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해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은 세 번째로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행복하지 못한 원인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이요, 또 하나가 부모와 아이들을 멍들게 하는 교육문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나라입니다. 부모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그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도한 교육열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까지 불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집집마다 교육비 부담으로 등이 휠 정도입니다. 과외나 학원 수강을 하지 않는 초·중·고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이미 과외공화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입시를 위한 과외는 말할 것도 없고, 예체능까지 과외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갈수록 전국이 학원의 숲으로 뒤덮여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분명 우리나라는 잘 살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데, 못살래야 못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과연 행복한 나라가 될까? 라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살맛나는 나라, 웃음이 넘치는 나라, 곧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오마이뉴스와 서울방송(SBS)에도 송고합니다.
김형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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