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선생님

2006.03.27 08:49:00


시린 겨울이 이울자 성급한 개나리가 봄을 깨운다. 매년 경험하는 일이지만 학년초가 되면 쏟아지는 업무로 계절의 흐름마저 놓치기 일쑤다. 기본적인 교과지도나 담임업무는 물론이고 생활지도, 학생 상담, 각종 회의 등으로 도무지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다. 대강 바쁜 일을 마무리짓고 잠시 여유를 찾을겸 벽에 걸린 달력을 올려다 보니 삼월도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는 고1 담임을 맡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기 마련인 새내기들이 가능한 빨리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담임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러는 몸만 학교에 있지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이들의 심정을 헤아려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를 잡아주는 길잡이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아홉 분의 1학년 담임 선생님 가운데 세 분은 올해 처음으로 교직에 입문했다. 취업난을 반영이라도 하듯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이제 막 교사의 꿈을 이룬 세 분의 총각 선생님들은 미처 현장 분위기도 파악할 겨를없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경력있는 담임들도 삼월 한 달은 버거운데, 하물며 새내기 담임의 어려움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담임은 매사에 신중하면서도 헌신적이어야 한다. 담임이라고 학생을 아래로 보고 윽박지르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분명한 원칙을 갖고 지도하되 상황에 따라 어르고 달래면서 적당히 밀고 당길 줄도 알아야 한다. 장학금이나 급식 지원 등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도 적기에 챙겨야 한다. 때로는 아이들로 인하여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지만 그렇다고 평상심을 잃어서는 안된다.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의 그 막막함이 떠올라 틈나는 대로 세 분의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자리배치나 청소 당번 지정 등 일상적인 부분에서부터 아이들간에 다툼이 일어나거나 시험을 보고 실의에 빠질 아이들을 찾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요령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몸으로 부딪치며 터득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같은 과목을 가르치고 또 앞자리에 앉았다는 인연으로 좀 더 관심을 쏟았던 최선생이 요즘들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취하느라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오로지 학교일에만 몰두하다보니 미처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 잔을 들고 슬그머니 최 선생의 곁으로 다가갔다. 선배가 건네는 커피 한 잔에도 최선생의 얼굴은 금세 홍조를 띤다.

"어때, 어렵지"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던 최 선생이 입술을 뗐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네요."
"아이들은 담임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화초와 같다네. 그래서 양분이 부족할 땐 거름이 되고 햇볕이 내려쬘땐 그늘이 되어주는 존재가 담임이지. 물론 이 모든 것이 헌신적인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지금은 어려워도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새록새록 용기가 솟아오를 걸세"

선배의 말이 힘이 됐는지, 방금 전까지 피곤해 보였던 최 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슬며시 최선생의 손을 잡았다. 풋풋한 젊음의 열정이 혈관을 타고 전해온다. 이제 막 자신만의 붓으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최선생. 아직은 서툴지만 곧 능숙한 솜씨로 선을 그리고 갖가지 색으로 채워갈 그만의 화폭을 기대한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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