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그 유혹과 불신의 고리를 끊자

2006.03.29 12:42:00

학부모로부터 과도한 寸志를 받은 모 초등학교 교사가 징역형에 집행유예, 그리고 추징금을 선고받음으로써 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이 최종 확정되면 교사직을 잃게 되었다.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파렴치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 판결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교사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했을 뿐 아니라 교직사회 전체를 불신의 늪으로 집어넣은 처신으로 재판부와 일부 학부모의 동정론에도 불구하고 교단에 서기에는 ‘부적격한’ 교사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런 교사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수업태도나 교우관계 등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싶어도 ‘寸志를 달라는 것’으로 곡해 받을까봐 참아야 할 판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보다 학부모를 상대하는 것이 더 힘든 세상이 되었다.

새학기가 되면 우리 교사는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다. 차라리 학년 초 “나는 절대 寸志를 거절한다”고 공개선언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 또한 아이들 앞에서 차마 꺼내지 못할 낯 뜨거운 말이다. 이제는 교사의 양식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교사들이 앞장서서 아예 ‘스승의 날’을 없애거나 방학 중으로 옮기라는 요구를 하고 이 날을 휴업일로 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옛날엔 자식을 맡긴 선생님께 참꽃으로 빚은 술 한 병을 선물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였고, 소풍 때 닭 한 마리를 튀기거나 정성스레 짚으로 싼 토종계란 한 줄을 보내는 게 남에게 흉이 되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당에서 책거리를 하면 스승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진심에서 우러난 대접을 하는 것은 결코 남의 손가락질 대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스승, 제자 그리고 학부모의 인간적인 윤리로 통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 그야말로 부끄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寸志라는 흉기가 우리 교직사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렸음은 물론이고 교사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심각한 혼란과 피해를 입는 것은 무엇보다도 선량한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들이다.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 도덕성의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은 고스란히 서로에게 상처로 남게 됨으로써 결국 학생들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교단이 이렇게 추잡한 걸로 비춰지면 어느 학생인들 교사를 스승으로 믿고 따르겠는가.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해 있는 부패, 그러나 교직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존경으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집단이건만 그 부패의 연장선상에서 寸志가 우리 교직사회를 불신의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다면 이는 교단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과감히 척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寸志 근절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할 수 있다. 주는 사람이 있어도 받지 않거나 받으려 해도 주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는 것이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寸志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나서 도덕불감증으로 얼룩진 유혹과 불신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학부모들도 교사에게만 寸志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려 들지 말고 스스로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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