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봄, 새로 이사를 온 아이들이 날마다 전학을 오는 시기여서 여간 바쁘지 않았다. 물론 담당 선생님이 계시지만, 하루에도 수십 명씩이 전학을 오는 시기이어서, 수업시간에도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으니 수업시간에는 일단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는 교감이 할 수밖에 없었다.
전학생들을 모아 놓고 간단히 학교 소개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댄다.
"감사합니다. 용정초등학교 교무실입니다."
"여기 0단지 00아파트인대요."
"네 부형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말씀하십시오 교감입니다."
"아, 교감선생님이시군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한테 무슨 할 말씀이 있으셨나 보네요?"
"네, 교감 선생님. 저 우리 학교에는 아파트 아이들도 있고 단독주택에 사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네, 단독 주택에 사는 아이들은 몇 명이 되지는 않죠."
"교감 선생님, 우리 학교에서는 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단독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따로 가르칠 수는 없는 거예요?"
"따로 가르치다니요?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예, 당연히 있죠. 아무래도 단독주택의 아이들은 수준이 떨어지지 않아요."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은......?"
"생활 수준이 다르니까 여러 가지로 수준이 떨어지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아파트 아이들과 단독주택의 아이들을 따로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따로라면..........?"
"다른 학교로 보내달라는 말이지요."
"그렇게 수준이 다를까요? 그리고 수준이 다르다고 다른 학교로 보내야 합니까?"
"당연하죠? 그런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되니까요."
"그 아이들이 그렇게 나쁜 아이들인가요?"
"나쁜 게 아니라 수준이 떨어지니까요."
"그럼 꼭 그렇게 다른 학교로 보내야 하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부형님. 문제가 좀 생겼는데요?"
"무슨 문젠데요?"
"우리 나라 교육법의 어디에도 그렇게 따로 가르치도록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단독 주택에서 알면 섭섭해하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 부형님, 그렇게 귀한 아파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감인 저도 단독주택에 살거든요. 그렇다면 먼저 저부터 다른 학교로 가야 할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어쩌지요."
"어머 죄송해요."
"짤깍."
이렇게 전화는 그치고 말았다. 대단히 죄송스런 이야기지만 이 아파트는 우리 학교의 학구 안에 있는 단독주택단지 하나와 아파트 단지 세 개중에서 가장 평수가 작은 아파트이었다. 또한 이 아파트지역은 고양시에서 그 당시까지만 하여도 가장 늦게 개발된 마지막 단지로 별로 인기도 없고, 소위 막차를 탄 비교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든 곳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작은 아파트에 사시는 부형님께서 이런 생각을 한다면 아마도 그 곱절도 더 큰 68평에서 70평대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기나 하겠는가 싶어서 아주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