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오후 1시 20분경, 지하철 5호선 군자역에서 차에 오른 나의 눈에 띤 한 사람이 있었다.
웬 여자가 지하철 찻간의 바닥에 신문지 한 장을 깔고 몸을 잔뜩 수그린 채 앉아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문에 가까운 맨 끝에서 두 번째 문 앞이었다. 좌석의 맨 끝에 앉은 사람은 원고지에 적은 글을 읽을 수 잇을 정도의 위치였다. 사람들은 차에 오르고 내리면서 그녀가 바닥에 있는 것을 보면서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곁의 친구와 소곤거리는 소리로 '미친 여자 아냐?' 하고 킥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친 여자?' 그녀는 분명 미쳐 있었다. 얼마나 열중인지 마치 자기 집의 방안에서 아니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듯 조금도 거리낌없이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적어도 30-40매 정도의 원고지 묶음에서 1/3 정도의 위치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무엇인가 잘 안 풀리는지 잠시 글을 쓰던 볼펜을 든 손을 귓뒤에 대고 한 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하였다.
그녀는 다시 손을 내리고서 조금 쓰다가 다시 멈추더니, 이번에는 마치 무엇을 조작하는 듯 손을 들어서 두 손으로 이리 저리 움직이며 무슨 기계를 움직이는 듯한 동작을 해 보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들고 무엇인가를 아주 빠른 속도로 써내려 간다. 원고지 두 장을 연거푸 넘길 동안 그녀는 그치지 않고 아주 열심히 써내려 갔다.
'미친 여자?' 그녀는 진정 미친 여자였다. 정신이 이상한 미친 여자라는 말이 아니라, 글쓰기에 미친 여자, 다시 말해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장소가 어디인지, 누가 보든지 말든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글쓰기에 미친 여자였다. 한 동안 글을 쓰느라고 정신이 없던 그녀가 다시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더니 너무 힘드는지 허리를 죽 펴는 것이었다.
이 때 잠시 보인 여자의 얼굴은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아닌 진정으로 글쓰기에 미친 듯 열성적인 40대에 가까워 보이는 극히 정상적인 여자였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열심이게 만든 것인지? 무엇을 그리 열심히 써내려 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부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60 평생 저렇게 무엇에 열심인 적이 있었는가? 지금까지 내가 저토록 정신을 집중하여 해본 일이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단 한가지에도 참으로 열과 성을 다하여서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러고도 과연 내가 인생을 잘 살아온 것인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마침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은 나는 호기심이 나서 찬찬히 그녀가 하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 몰래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디카에 담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정신이 이상한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토록 일에 미친 적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생각으로 일에 미친 여자를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