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찾아뵈어 정말 죄송합니다

2006.05.15 15:45:00


선생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 초대의 글

연둣빛 잎새가 그 푸르름을 더해가고 향긋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계절의 여왕 오월에, 문득 고개 들어 되돌아보니 아득한 그 시절 저희에게 한없는 사랑으로 가르침을 주시던 스승님들이 계셨습니다.

불혹의 나이... 선생님들께서는 그 연세에, 아니 더 일찍부터 저희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셨는데, 저희들은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기억해냈습니다.

세월의 무게와 나이테가 한층 더 깊어지고 굳어지기 전에 어서 달려가 그동안 무정했던 마음도 용서받고 세월의 덮개도 털어내고 싶습니다.

그동안 무엇이 그리도 바빴을까요? 왜 감사와 사랑의 인사 한번 전하지 못했을까요? 어리석은 제자들의 무심함을 너그럽게 감싸주시고, 축복의 계절 가운데 하루를 저희들을 위해 내어주시기를 감히 청하옵니다.

열다섯 소년 소녀로 돌아가 다시 한번 선생님들께 한껏 재롱을 부리고 사랑받는 제자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 지난 추억을 반추하고 아로새기는 아름다운 시간 만들어 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리옵니다. - 선생님을 보고 싶은 제자들 일동

어제(14일) 대전의 한 호텔에서 중학교 시절 은사님들을 모시고 조촐하지만 뜻 깊은 사은 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졸업한 지 무려 25년만의 일입니다. 제가 졸업한 중학교는 충남 논산 양촌의 작은 시골학교로 남학생, 여학생 모두 합하여 네 개 반이 전부였습니다.

저희가 나고 자란 고향 양지뜸은 워낙 작은 바닥이라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무들이었습니다. 10년지기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사는 게 뭔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려 22년 동안 그 흔한 동창회 한번 갖지 못했습니다.

논산 읍내로, 대전 시내로, 또는 서울로, 경상도로, 전라도로 그렇게 전국 각지로 흩어져 일부는 상급학교로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일부는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고, 그렇게 군대가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느라, 다시 말해 그동안 앞만 보고 숨 가쁘게 사느라 서로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잊혀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가 되자, 아련히 떠오르는 옛 친구들의 모습….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들 지내고 있을까?’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몇몇 친구들이 의기투합하여 재작년에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자, 한동안 문전성시를 이루며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날이 새는 줄도 몰랐습니다.

인터넷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며 처음으로 동창회를 열던 날,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이산가족 상봉장 같았습니다. 모두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주문한 고기를 그만 다 태우고 말았습니다. 이후 몇 번의 동창모임을 거치면서 기왕이면 뭔가 뜻있는 일을 해보자고 하여 2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올해 옛 스승님들을 모시고 사은회를 한 것입니다.

‘초대의 글’에서 밝혔듯이 진작 찾아뵈어야 하는데 너무나 늦게 찾아뵈어 정말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물론 김영희 선생님은 여전히 젊으셔서 동창인 줄 알고 말을 놓는 실수를 저지른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선생님들의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교단을 지키고 계신 선생님은 두 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건강상의 이유로 정년보다 일찍 퇴직하셨더군요. 몇 년 전에 대수술을 하셨다는 오선생님, 네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는 박선생님,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명예퇴직을 했다는 정선생님, 특히 현재 위암으로 투병 중이라 끝내 사은회 자리에 나오지 못한 우선생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1부는 ‘기념의 공간’, 2부 ‘감사의 공간’, 3부 ‘기쁨의 공간’으로 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은사님들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뜻에서 꽃다발과 시(詩)를 새긴 감사패 증정, 그리고 저희들의 정성을 모은 촌지(?) 전달과 함께 ‘스승의 노래’도 부르고, “만수무강하십시오!” 하며 선생님들께 처음으로 큰절을 올렸습니다.

제가 준비한 은사님께 드리는 시, ‘물빛 선생님’을 낭송하자 장내가 숙연해졌습니다. 몇 명의 여자애들(아니, 아줌마)들은 끝내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감동했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진작 이렇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죄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선생님들께 술을 따라 드리기고 하고 또 술 한 잔을 받아들기도 하면서 25년이란 세월의 벽을 허물고 있었습니다. 졸업 사진첩을 꺼내보면서 이런 저런 추억의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어느새 저희는 25년 전의 산골 소년소녀도 돌아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좋은 말씀과 함께 구성진 노래도 청해 듣고, 또 저희들은 선생님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 한껏 춤을 추며 재롱을 피웠습니다. 선생님을 업어드리기도 하고, 헹가래도 쳐드리고, 또한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여선생님의 손을 잡고 열창도 해보았습니다.

재작년 처음 동창회 때처럼, 이번에도 다들 추억을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추억과 이야기 세계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온화한 성품에 박학다식함으로 사회 시간 한 시간을 꽉 채워주셨던 조동련 선생님, 올곧고 강직한 성품으로 사도의 본을 보여주신 오강호 선생님, 자상하고 꼼꼼하게 우리들의 길잡이역할을 해주신 박인규 선생님, 장기 자랑과 축구 시합 등 많은 추억거리를 안겨주신 정창기 선생님, ‘뜻을 세우자 뜻을 가꾸자 뜻을 이루자’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신 김영희 선생님, 멋진 외모와 그림 실력으로 여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박창순 선생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셔서 저희들에게 언제까지나 희망의 등대가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병환으로 참석하지 못한 우상현 선생님과 역시 집안 일로 참석하지 못한 윤석남 선생님은 저희가 따로 찾아뵙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30회 사은회에는 더 많은 동창들을 수소문하고, 또한 아직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선생님까지 다 찾아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선생님과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올해보다 몇 곱절 더 뜻 깊은 행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스승의 노래 가사처럼,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바르고 참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형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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