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O반 5교시 영어시간. 오랜만에 교실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로 활기가 넘친다. 사실 지난주까지 교실은 몇 명의 아이들이 강원도 도민체전 강릉시 대표로 참가한 탓에 썰렁하기까지 했다. 며칠만에 나타난 아이들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은 며칠 동안의 수업결손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자칫 시험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따라서 조금은 마음을 추슬러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훈화라도 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도민 체전에 참가한 아이들 중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유난히 학급에서 몸집이 큰 탓일까. 씨름 선수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한 녀석이었다. 하여 모교의 명예를 높였기에 기특하기도 하였다. 우선 은메달을 딴 것에 축하를 해주고 난 뒤 손을 든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래,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니?”
“선생님,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무슨 시간을 말이니?”
“제가 저희 반 아이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이야기인데 그러니?”
“사실 이번 도민체전에 다녀오고 난 뒤 느낀 바가 있습니다. 그 느낀 점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난 뒤 다소 의구심이 생겼다. 평소 교실 뒤에 앉아 자주 졸던 녀석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녀석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이야기를 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워낙 덩치가 큰 녀석이라 교단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하물며 녀석은 마치 전쟁에서이기고 돌아온 개선 장군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교탁 앞에 선 녀석은 헛기침을 몇 번하고 난 뒤, 시합에서 은메달을 따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이야기를 하였다. 어찌나 이야기를 잘 하던지 마치 시합을 직접 보는 것과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매 시합마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목소리가 진지해지기까지 했다.
녀석은 10분에 걸쳐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느낀 점을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힘들지 않는 일이 없는 것 같더라.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공부만큼 쉬운 것은 정말이지 없다는 것을 이번 시합을 통해 알게 되었어. 그러니 우리 공부 열심히 하자.”
그 아이의 말이 끝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교실은 숙연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부에 별 관심이 없던 녀석의 입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말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그 녀석의 말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무조건 다그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어떤 계기(동기유발)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 녀석이 아이들 앞에서 한 약속을 잘 지킬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녀석이 도민체전에서 은메달보다 더 값진 것을 얻어 왔다는 사실에 후한 점수를 주고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