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사고파는 방학숙제, 더 이상 필요할까

2006.08.28 13:33:00

학교마다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다가온다. 이맘때면 학생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덩달아 손길이 바빠지기 마련이다. 밀린 방학숙제 때문이다. 사실 개학이 임박해서 일기를 비롯한 밀린 숙제를 하느라 밤을 새거나 부모형제까지 모두 나서 방학숙제를 도와주던 모습은 나름대로 정겨웠다.

그러나 이제는 학생들이 방학숙제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최근 형식적으로 제시되던 방학숙제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개선되고는 있지만 방학숙제 결과물을 가지고 시상도 하고 섣불리 수행평가에까지 반영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없어야 할 것 같다. 숙제를 스스로, 성실히 한 학생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등의 단순한 ‘방학숙제 베끼기’는 이제 고전적인 수법이 된 것 같다. 인터넷에서 안 되는 게 없다는 세상, 이제는 혼자 하기 어려운 방학숙제를 도와주는 수준을 넘어 아예 숙제를 대행해주거나 자기가 한 숙제를 사이트에 올려 다른 사람이 다운받을 수 있게 하면 돈을 주는 얄팍한 상술까지 가세함으로써 학생들 간에 숙제를 사고파는 신종 ‘숙제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의 한 숙제도우미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골치 아픈 방학숙제, 하루 만에 끝내자!”라며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영화감상문을 비롯한 각종 글쓰기나 만들기 숙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하물며 탐구보고서나 포트폴리오 등 장시간을 요하는 것까지 숙제라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신기한 것은 가족과 제주도를 여행하고 일기형식으로 작성한 초등학교 숙제, 동반 족사항만 올리면 해당 학년 수준에 꼭 맞는 기가 막힌 여행보고서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글의 수준은 물론 포토샵으로 사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주니 제주도는 실제로 가지 않았어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독후감 등 간단한 글쓰기는 건당 1만원, 보통 5만∼6만원만 주면 가족신문, 체험학습보고서, 각종 수집, 발명품 제작까지 아무리 골치 아픈 숙제라도 ‘한 방에’ 끝내주니 요즘 아이들과 학부모는 정말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짝퉁숙제' 유혹은 꼬박꼬박 시간맞춰 일기를 쓰고, 마음 졸여가며 성실하게 탐구한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등의 대부분 선량한 학생들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아이들을 신종 ‘숙제매매’ 시장에 내몰고 얄팍한 상술로 돈을 버는 인터넷 업체 양산만 부추기는 비교육적인 방학숙제는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

이제 개학하여 숙제대행업체에서 돈주고 산 '짝퉁숙제'를 골라 상도 주고, 이를 근거로 수행평가에도 반영하는 '철없는' 선생님들을 보며 학생들과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할까.

베끼기가 잘못이란 것조차 모르고 어린 아이들이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방학을 오히려 ‘한몫’ 챙길 수 있는 기회로 벼르는 세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숙제를 도울 수 없는 맞벌이라는 핑계로 은근히 묵인하는 학부모들 모두 일그러진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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