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아이, 다시 남은 시간 함께 갔으면

2006.08.22 20:35:00

정말 아끼는 아이가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이루어가려는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 간혹 어긋난 행동이 있을 시 칭찬을 겸한 꾸중으로 그 아이의 마음을 잡아갔다. 아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러다 방학하기 두 달 전, 기어이 일은 터지고 말았다. 단짝처럼 어울리던 두 아이가 가출을 했고, 이에 녀석도 동요되고 있었다. 이에 점차 그 아이의 행동은 지뢰밭 길을 걷는 모습처럼 위태해 보였다.

말없이 수업 중간에 가방을 메고 학교 밖으로 나간다든가, 종례를 받지 않고 가버리는 행동이 자주 나타났다. 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 아이들의 전언을 들은 후엔 다음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를 믿었기에 질책보다는 열심히 해보자는 말로 다독였었다. 그렇게 잡아가던 아이는 기말 고사 첫날 첫 시간만 시험을 치룬 채 교실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소식이 없었다.

여러 방법으로 그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지만 소문만 있을 뿐 알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내가 하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다른 전화를 통해 어쩌다 받으면 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다 얼마 전에 ‘선생님 잘 계시죠? 저 00에요. 몸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잘 지낸다며 만나자는 말에 ‘선생님 뵈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학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언젠가 꼭 찾아뵐게요.’라는 말로 거절을 하였다.

아이와 몇 마디 문자를 주고받으며 고민에 들어갔다. 그 아이를 그냥 내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무작정 잡아서 끌고 올 문제도 아니었다. 이런 아이들의 특성은 강하게 나가면 반발력이 심해 더욱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왔다 하더라도 얼마 참지 못하고 또 나가기 마련이다.

일단 마음을 움직이는 게 좋은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그러다 엊그제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받을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벨 소리가 한참을 울리고 나서 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00 아니니?”“맞는데요. 누구세요.”

녀석은 전화를 한 사람이 선생님인지 모르고 무심결에 받은 것 같았다. 오락실인지 주변에선 쿵쾅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선생님이란 걸 확인하고 잠시 멈칫한 것 같았지만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길 하며 일단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임마, 선생님은 널 보고 싶은데 넌 안 보고 싶니?”“…… 보고 싶어요. 근데 자신이 없어요.”
“뭐가 자신이 없어. 보고 싶으면 그냥 보고 싶은 거지.”
“죄송해요.”
“니가 죄송할 게 뭐 있어. 근데 요즘 뭐하고 지내지. 집엔 들어갔니?”
“네. 일하고 있어요.”
“그래. 공부는 어떻게 할 거야. 마음 좀 돌려봤니?”
“검정고시 준비하려구요. 아직은 이게 좋아요.”

그러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얼굴 보자는 말엔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저 이곳에 있으니 데리러 와 주세요.’ 하는 신호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모든 마음의 결정을 했으니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자기가 생각했던 길을 가겠다는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화 속에서 아이는 웃기도 했다. 갈등의 몸짓도 얼핏 보여주기도 했다.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던 아이가 이젠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 밖에 없다. 만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음을 돌려서 새 학기엔 서로 웃으며 이야길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가출 전이나 가출 후의 지금이나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고, 3월에 처음 만났을 때의 미소 띤 얼굴로 만났듯 다시 만나 남은 시간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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