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식 맞은 한 선생님에게 드리는 글

2006.09.02 17:34:00


이제 떠나시군요. 2년 남았다 1년 남았다 하시더니 25년 동안 몸담았던 교정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 한가득 남기고 떠나시군요.

교무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시면서 감정이 복받쳐 끝내 말씀을 하지 못하시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그러다 겨우 가슴을 진정시킨 후 하신 말씀은 모두를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떠나면서 제가 교사로서 합당한 사람이었나 반성을 해봤습니다. 교사로서 열심히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빚 갚는 마음으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죄송하다니요. 선생님은 누구보다 열심이었다는 것을 후배들은 압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지냈다는 걸 다 압니다. 아직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한 적이 없는 학교(본교)에서 선생님의 정년퇴임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닙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난 후 교장 선생님이 "평교사로서 정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학교나 개인으로서 큰 영광"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평교사로 있다가 정년을 맞이하는 게 왜 이리 힘든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면 정년이 되어 퇴임하는 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평교사로 있다 퇴임하면 왜 눈치를 보는지요.

그래서 선생님의 퇴임식을 바라보면서 많은 후배들은 여러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생각 속에 선생님을 축복의 마음으로 떠나보냈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선생님의 정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보내드리려는 후배 교사들과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어느 퇴임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쉬운 마음이나, 학교를 잊지 않겠다는 말이나,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일본과 우리의 역사적 관계의 현실의 모습을 지적하며 우리의 삶의 자세를 일깨우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씀도 곁들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열아홉 순정>이란 드라마 이야기와 노래를 잠시 부르시곤 아이들에게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성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결혼해서 잘 살고 아이들도 많이 낳으라는 덕담도 해주셨지요. 그게 애국하는 길이라고 하면서요.

퇴임사를 마치고 내려오시는 선생님에게 아이들과 후배들은 모두 큰 박수를 쳐 드리며 선생님을 떠나보냈습니다. 떠나시는 선생님의 눈가엔 또다시 이슬이 맺힘을 보았습니다. 젊음을 불태우고 평생을 헌신하셨던 교정을 떠나려니 왜 눈물이 나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을 알아주셨던 선생님

선생님을 떠나보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있습니다. 늦깎이로 학교에 왔을 때 막걸리 집에 데려가 제게 해주셨던 말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김 선생, 힘들지. 말 안 해도 내가 다 알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아. 그런 줄만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그땐 조금은 답답했던 때였습니다. 그 답답하던 때에 선생님이 해주셨던 한 마디는 막걸리 한 잔 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말없이 절 이해하고 염려해주시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 마음의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 무주로 마지막 친화회 여행을 갔을 때였지요. 그때 선생님은 짧은 한숨을 쉬시며 그랬었지요.

"이게 내 마지막 겨울여행인가? 참 섭하고 아쉽구먼."

혼잣말처럼 내뱉은 선생님의 그 한 마디엔 선생님의 복잡하고 아쉬운 마음이 다 표현되었지요. 아직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많은 후배에겐 선생님의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요.

그러고 보니 그땐 선생님께선 약주를 많이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노래를 하셨지요. 노래를 할 때의 선생님의 모습은 천상병 시인의 모습을 너무 닮으셨습니다. 천진난만한 표정과 몸짓, 그런데 천상병 시인은 환한 웃음을 웃으시는데 선생님은 잘 웃지 않으셨지요.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에게 술 한 잔 따라드리면 호통 치듯 "야, 너 잘 해. 너 나 잊으면 안 돼. 알지." 하곤 했던 기억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강영희 선생님! 이제 선생님은 평생 몸담았던 교정과 아이들 곁을 떠나 새로운 길에 들어서셨습니다. 어쩌면 당분간은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선생님이 사랑하던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려 밤을 뒤척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희미한 기억의 그물로 묻혀지겠지요.

선생님, 이제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 할까 봅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 언제나 건강에 유의하시고 내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 내어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선생님을 마음으로 생각하는 후배가 짧은 글로나마 인사드립니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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