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11월 첫 토요일 밤입니다. 오후를 유익되게 잘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오늘 틈틈이 읽은 글 속에 편애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에게 편애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낮에 화장실에 가면서 한 선생님께서 옷을 예쁘게 입고 오신 것을 보고서 ‘선생님, 오늘 옷이 참 예쁘네요. 오후에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환하게 웃으면서 ‘아닙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주변에 서너 분의 선생님이 앉아 계셨는데 한 선생님께서 ‘교감선생님, 총애의 화살이...’하면서 말의 꼬리를 흐리게 하더니만 웃으시더군요.
저는 그 순간 아하 여러 선생님들 계시는데 한 선생님에게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겠구나, 자칫하면 편애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언제나 어느 선생님도 편애하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인간인지라 무의식적으로 편애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을 공평하게 대한다는 자체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잘해 주면 좋아하게 되고, 자기에게 서운하게 하면 싫어하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선생님들 중에도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을 보면 좋아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싫어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집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녀 중 말 잘 듣는 애는 좋아하지만 말 잘 안 듣는 애는 싫어하지 않습니까? 공부를 잘하면 좋아하고 공부를 잘못하면 싫어하지 않습니까? 말이나 행동이나 모습이 닮았으면 좋아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싫어하지 않습니까?
평범한 가정에서도 그러한데 가정이 좀 복잡한 가정에서는 더욱 심할 것 아닙니까? 자기 뱃속에 난 애하고 그렇지 않은 애하고 누구를 더 좋아하고 누구를 더 미워하겠습니까? 자기 뱃속에서 난 애가 공부를 잘 못하고 그렇지 않은 애가 공부를 더 잘해도 어떻습니까? 자기애는 좋아하고 다른 애는 공부 잘 한다고 더 미워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사람은 누구나 편애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자녀를 학생들을 선생님들을 편애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편애하면 자녀를 망칩니다. 편애하면 가정을 망칩니다. 편애하면 학교를 망칩니다. 편애하면 가정분위기를 망칩니다. 편애하면 교무실 분위기를 망칩니다. 편애하면 미움이 싹틉니다. 편애하면 시기가 생깁니다. 편애하면 질투가 생깁니다.
편애하면 상대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편애하는 사람까지도 미워하게 됩니다. 엄마가 애를 미워하면 사랑받는 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부모까지 미워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어느 학생을 좋아하면 나머지 학생들은 그 학생만 미워할 뿐 아니라 그 선생님도 미워하게 됩니다. 저가 만약 한 선생님에 대한 호의적인 말과 관심을 갖게 된다면 나머지 선생님은 보나마나 그 선생님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할 뿐 아니라 저까지도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들은 얼마나 예민합니까? 학생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오늘 읽은 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편애입니다. 지나친 편애는 가정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때로는 편애 때문에 일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자녀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편애일 수도 있습니다. 지나친 편애는 가정을 파괴하고 학급을 파괴하고 학교를 파괴합니다. 지나친 편애는 자녀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학생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때로는 편애 때문에 일평생 자녀에게 상처를 안겨 줍니다. 학생들에게 상처를 안겨 줍니다. 선생님들에게 상처를 안겨 줍니다. 그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을 편애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편애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장, 교감이 선생님을 편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애써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자녀도 살리고 학생도 살리고 선생님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에서 편애는 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