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게 아이마저도 입시지옥으로

2006.11.14 16:43:00

특목고 경쟁률이 예사롭지 않다는 방송보도가 있었다. 입시에 논술과 구술의 반영 비율이 높아지면서 특목고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해진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특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교육부에서 특목고 인허가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공교육이라고 수월성 교육을 배제할 수 없고, 시대적인 열망과 우수한 인재들을 조기 육성하겠다는 의도 등이 특목고의 발생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현재 평준화 지향의 현행 공교육 제도와는 다분히 배치되는 대목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특목고가 가지는 여러 가지 매력들이 학부모들에게, 특히 우수한 아이들의 학부모들에게 상당한 구매력(?)을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특목고에 대한 열망이 과도해짐으로써 지자체마다 특목고를 유치하고, 심지어는 행정과 정치적인 수단과 방법까지 과용하려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교육적인 상황을 넘어 과도한 사교육비 양산과 양극화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선생님, 특목고 가려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되나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주변에서 가끔 아이들 교육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경력도 일천하거니와 교육상담을 할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터라 만족할 만한 답변을 속시원하게 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요즈음 매일 늦게 퇴근하시네요."
"예,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닙니까? 우리 윤민이와 가끔 놀아주었는데, 요즈음은 통 보이지가 않네요."
"○○이 요즈음 영어학원 다닌다고 노는 시간이 많이 줄었어요. 조금 일찍 시켜 보려고요."

○○은 인근 초등학교 3학년으로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법 똘똘해 자기 엄마가 꽤나 열성적으로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윤민이와 몇 번 놀아주는 바람에 먹을 것도 주고 해서 친해졌는데, 최근에 잘 보이지 않아 물어보았더니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요즈음 말하는 특목고에 보내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야겠죠? 서울 사는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니 장난 아니더라고요."
"특목고가 뭐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입시 준비 시킨단 말입니까. 즐겁게 뛰어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것이 우선이죠."

"선생님도, 그런 말씀 마세요. 특목고에 보내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수학, 그리고 논술 등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 잘 따라 합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주변의 친구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시켜 보기는 하는데, 아이도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고, 돈도 상당히 많이 들기도 하고…."

입시 변화에 힘겨워하는 우리 학부모와 아이들

○○이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수긍할 만했지만,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 영어학원에 보낸다는 소리를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학부모들이 이렇게나 민감하게 입시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놀랍기도 했다. 한편으론 명색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오히려 학부모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교사로 오인 받지는 않을지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짜리를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 벌써부터 준비시키는 모습에서 자꾸만 우리 교육의 진정성이 뭔지를 캐묻고 싶었다. 뭔가 분명 잘못 되어가는 느낌이다. 최근 부쩍 늘어가고 있는 특목고 신설 바람에 이젠 대학입시가 아닌 고등학교 입시로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들마저도 입시의 대열에 뛰어드는 모양새가 되고 있으니, 이게 진정 우리가 바라는 모습은 아닌 듯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교육비가 날로 증가해 서민들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판국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 되고 만 듯한 느낌이다. 특목고가 일부 돈 있고 능력 있는 학부모들의 끝없는 구매력 창출에 일조를 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정작 그런 교육상황이 빚어내는 사교육의 엄청난 증가와 양극화의 어두운 그림자는 정작 감추어지는 느낌이다.

코흘리개 아이마저도 입시지옥으로

밤 9시가 넘어서야 앞집의 ○○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그의 엄마가 차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학원에 보낸다고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원어민에게 몇 명씩 짝을 이루어 그룹 과외를 시키는 모양이었다. 힘들어하는 아이의 볼멘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아내와 ○○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직종에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 아이 교육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 나누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앞집 ○○이 계기가 된 것이었다.

"여보, 우리 윤민이도 지금부터 학원 같은 데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이면 되지 욕심내지 맙시다. 윤민이가 어린이집에 열심히 다녀주는 것만 해도 고맙고 감사한데…."

그래도 아내는 앞집 이야기를 듣고는 약간은 불안한 속내를 감추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자꾸만 ○○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 윤민이와 밖에서 축구공을 차며 즐거워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윤민이보다야 훨씬 컸지만 그래도 아직은 코흘리개 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아이를 벌써부터 입시지옥으로 떨어트린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묻고 싶었다.

일부 학부모들의 특권을 위해 특목고를 자신들의 지역에 유치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정치인들과 일부 교육관리들을 보면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 그렇지 않아도 입시지옥으로 병들어가는 우리의 수많은 청소년들도 모자라 이제는 갓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온 코흘리개마저도 그런 입시지옥의 첨병으로 몰아세우는 그런 무시무시한 우리 교육상황이 왠지 자꾸만 교사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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