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촌에서 양촌까지 청주삼백리 답사길

2007.01.11 08:36:00

제41차 청주삼백리 답사가 효촌리에서 출발해 무심천, 솔뫼마을, 사당골, 폭서암을 거쳐 양촌리까지 전날 내린 눈길을 헤치며 진행되었다.

25번 국도에서 청주시 지북동과 경계하고 있는 마을이 청원군 남일면 효촌리다. 효촌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조선조 세조시대 부모에게 효가 지극하였던 ‘경연’이란 효자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마을이다.



우리 일행들은 ‘청주삼백리 답사길’이 써있는 리본을 가방에 달고 줄을 지어 눈길을 걸었다. 오가는 사람들이나 지나는 차량안에서 신기하다는 듯 우리를 바라본다. 길이 미끄러워 외출을 자제하는 날 떼를 지어 들판으로 몰려다니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직접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지역문화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청주삼백리에 대해 아직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작은 물길을 건너 무심천을 따라 상류방향으로 걸었다. 갈대 속에서 겨울철새들이 떼를 지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철새들을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낯선 침입자가 되어 철새들을 놀라게 한 것이 미안했다.



몇 년 전, 수달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지점에 도착했다. 송태호 대장으로부터 최근 무심천에 수달이 목격되고, 수달의 배설물이 확인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이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자연생태하천으로 거듭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무심천이 2급수가 되며 각종 물고기는 물론 황조롱이, 백로, 원앙 등의 서식지가 되었기에 수달의 존재에 의미를 더 부여해야 한다.



신송대교 위에서 무심천과 용평들을 바라봤다. 직강형 하천으로 정비를 하기 전 무심천의 물길은 구불구불 자연 그대로였다. 그래서 분평동까지 이어져 있는 넓은 들의 이름에 용평, 즉 구불구불한 것을 뜻하는 용이 들어있을 것이다.

용평들에서 신송리 방향을 바라보면 소나무군락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1894년 동학운동 당시 청주, 청원지역의 총본부인 대도소(大都所)가 있었던 송산(솔뫼, 솔메)마을이다. 마을 경로당 앞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다 동학의 접주였던 강영문의 후손으로 선조들에게 전해들어 솔뫼마을의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강순원씨를 만났다.



충청지역 동학의 대접주는 손병희보다 나이가 7살이나 많은 조카 손천민이었다. 밖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고, 보은이나 전라도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라 손천민은 솔뫼마을을 본거지로 삼았다. 또 마을 뒷산에서 청주가 한눈에 보여 외부의 동정을 살피기도 좋은 지형이다.

손천민이 기거하며 포교와 거사를 준비하던 대도소는 최근에 철거되어 빈터만 남아있다. 강순원씨에 의하면 사람들을 많이 맞이하기 위해서 안채는 작고 사랑채를 크게 지은 집이었다. 마을 뒤 용대에서는 동학군이 화승총을 쏘며 훈련을 했다는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여러 가지 대비도 철두철미했던 것 같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접주 강영문의 집에는 말 못하는 머슴을 고용해 비밀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했다. 외부에서 일반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전염병이 도는 것처럼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거나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은 상복을 입고 출입하도록 위장을 했다.

동학교도의 후손들은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없을 만큼 고초를 겪었다. 강순원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선조들이 동학에 앞장섰다는 것을 감추고 살았다며 영문의 아들 학수씨가 중으로 변복을 하고 앵금장이로 밥을 얻어먹으며 전국을 떠돈 얘기를 들려줬다.



강순원씨에게 귀중한 이야기를 듣고 가중리 사당골로 향했다. 옛날에 무사들의 사장이 있었다는 사당골 입구에는 일행들이 수령을 150년 정도로 추정한 큰 느릅나무가 있다. 일행들은 한결같이 지금까지 이렇게 큰 느릅나무를 본적이 없다고 한다. 느티나무가 아닌 느릅나무가 마을 어귀에 있는 것도 신기하다.



사당골을 지나 장암사 앞 냇가에 있는 폭서암으로 갔다. 폭서암은 ‘장수바위, 장바위’라고도 부르는 높이 4m, 둘레 10m의 커다란 바위다. 전설에 의하면 영조 때의 유명한 시인이자 문장가였던 ‘노긍’이라는 장수가 이 바위에 살았다. ‘노긍’이 바위 위에 정자를 세우려고 바위를 덮고 있는 뚜껑처럼 생긴 바위를 옮기려 하자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일어나 정자 세우는 일을 중지했다. 여름에 ‘노긍’이 습기가 찬 책을 이 바위에서 말렸다고 하여 붙여진 ‘폭서암(曝書岩)’이라는 큰 글자가 바위에 써있고, 노 장수가 살던 바위라는 뜻에서 ‘장수바위’로도 불린다.



폭서암을 돌아서면 장암동 연꽃방죽이다. 연꽃을 보러 몇 번 찾았던 곳인데 방죽 한가운데 못 보던 정자가 들어서 있다. 여름에는 연잎이 방죽 가득 들어차 있었고, 군데군데 피어있는 연꽃이 아름다웠는데 볼품없는 연대들만 얼음 위로 삐죽삐죽 나와 있다.

정자 둘레에 옹기종기 서서 점심을 먹었다. 얻어 마신 술 몇 잔이 속을 따뜻하게 한다. 점심을 먹기 바쁘게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한다. 아이들과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눈싸움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





방죽말을 지나 산으로 들어섰다. 능선을 따라 가시덤불을 헤집고 나가니 양촌리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멀리 양촌리와 망월산이 보인다. 일반 서민들이 묻힌 공동묘지라 비석도 가지각색이다. 장례문화가 바뀌고 있어 다행이지만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죽어서도 차별받는 인생살이를 생각했다. 공동묘지에서 단체사진도 찍고, 몇 명은 신나게 눈싸움도 했다.



양지쪽 마을이라 양지뜰로도 불리는 양촌리로 내려갔다. 호숫가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왕버들 두 그루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있다. 바로 앞이 경부고속국도 청원IC나 신탄진으로 가는 17번 국도다.

눈비가 내려도 청주삼백리의 답사는 계속된다. 청주삼백리의 답사길은 지역문화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진행형이다. 내 고장의 역사를 제대로 배운 하루였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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