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날, 이 학생을 칭찬합니다~

2007.02.09 10:01:00

2년 동안 참았던 제자의 선행, 공개합니다.
아름다운 청소년 김성일 군... "알려지면 우쭐한 마음 생길지도"







오늘은 우리 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3년,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12년 동안 공부하느라 놀 것 못 놀고, 하고 싶은 일 뒤로 미루고, 오로지 공부벌레로 살아온, 그리하여 마침내 그 어두움을 뚫고 입시지옥이라는 터널을 통과한 졸업생 모두에게 정말 고생했다고, 참으로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모든 졸업생들이 축하 받아 마땅하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더 축하하고 칭찬하고 싶은 학생이 있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재작년의 일입니다. 김성일군(서울 양천고)이 뜬금 없이 찾아와 성적우수 장학금으로 받은 돈이라며 제가 동참하고 있는 '해내장학회'에 60만원을 내놓았습니다.

"선생님 하시는 일에 이 돈이 얼마나 큰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마음고생을 하는 학생들을 돕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동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익명으로, 또한 비밀로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성일아, 고맙다. 그리고 참 대견하구나! 너의 소중한 이 장학금은 한국복지재단을 통해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전달하마. 아마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저는 이 일로 성일군과 몇 차례 만나면서 참으로 요즘 보기 드문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아직 어린 나이에 어떻게 기특한 생각을 다했을까? 그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빛 가운데 있을 때 그림자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건만.

2년 동안 제자의 선행 사실을 감춰야 했던 속사정





젊은 세대로 갈수록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어 가는 추세에, 특히 공부 잘하는 소위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솔직히 이기적이고 버릇없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은 편이라는 저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성일군이 한순간에 깨뜨려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성일군도 그렇게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돈도 아니고 공부 열심히 해서 난생 처음으로 받은 장학금인데, 사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런 유혹들을 다 뿌리치고 뜻 있는 일에 써달라고 선뜻 내놓을 수 있는 그 용기에 감복했습니다.

또한 다른 곳에 기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같은 또래 아이들의 어려움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데 저는 더욱 감동했습니다. 그늘지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성일이의 그 마음이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착한 일을, 훌륭한 일을 해놓고도 쑥스러운 듯 익명으로 해달라고, 꼭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 아이가 있다니, 요즘에 이런 아이가 또 있을까요?

"성일아, 이렇게 좋은 일은 알려도 되지 않을까? 굳이 숨겨야 될 이유가 없잖아. 학교에 말해서 표창장을 줄 수도 있고, 또 언론에 미담사례로 알려서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듯한데…."
"아니예요, 선생님! 이 일이 알려지면, 저도 모르게 우쭐한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또 선행상 받아서 대학 가는데 혜택 봤다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요. 대학은 제 실력으로 갈래요."
"성일아, 너 거기까지 생각했니? 선생님 너한테 감동 먹었다. 야, 그런데 내 입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 어떻게 하지?"
"정 그러시면 졸업할 때까지만 참아 주세요."

그래서 저는 2년 가까이 성일이의 선행 사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대나무밭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했다는 옛날이야기가 마치 저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에야 입에 물린 재갈과 빗장이 빠졌으니, 이제는 마음놓고 힘주어 큰소리로 말합니다.

"김성일군을 칭찬합니다~ 딸 있으면 정말 사위 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장학금 쾌척 이후로도 용돈 기부... 원하는 대학에 당당히 합격





성일군은 장학금 쾌척 이후로도 용돈을 아껴 몇 번이나 저에게 해내장학회에 보태라며 가져왔습니다.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되는 선행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또한 성일군은 실력으로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약속까지 지켰습니다. 그동안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한 덕에 원하는 대학(서울대 공대)에 당당히 합격을 한 것입니다.

"성일아, 진심으로 너의 졸업과 대학 합격을 축하한다. 넌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아름다운 청소년이다.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지키거라. 그러면 너는 분명 이 사회에서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키가 작아 고민이냐? 살이 쪄서 고민이냐? 얼굴이 못생겨 고민이냐? 공부를 못해 고민이냐? 거기에 성실하고 마음까지 착하고 겸손하기까지 하니…' 친구들의 이런 시샘 어린 푸념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새겨듣기 바란다.

성일아, 그러고 보니 너는 많은 복을 타고 난 사람이다. 하늘이 참으로 너에게 많은 것을 주었구나. 그러니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많이 받을수록 많이 베풀려고 노력하거라. 또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낮아지고 더욱 낮아지거라.

말 안 해도 잘 하겠지만 네 주변에서 키가 작아 고민하는 친구, 살이 쪄서 괴로워하는 친구, 못생겼다고 자책하는 친구, 공부 못해 낙담하는 친구의 마음들도 지나치지 말고 읽기 바란다. 노파심에서 사족을 달았다. 이제 너는 교정을 떠나지만 선생님은 늘 너를 기억하면서 너를 위해 기도하마. 마지막으로 너의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시 한 수를 선사하마."

꽃이 지는 소리를 들으려 내려왔다가
그만 꽃이 되어 버린 앉은뱅이꽃,
너의 얼굴을 보려면 일단은 앉아야 한다
너의 눈빛과 입맞춤하려면
키를 한 자는 더 낮추어야 한다
너의 마음과 영혼까지 읽으려면
눈, 코, 입,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감히 인간을 머리 숙이게 하는,
끝내 쭈그려 앉히고야 마는
너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큰 꽃!

(자작시 '쇠별꽃')


"착하고 마음이 따뜻해서 기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김성일군의 솔직한 이야기


다음은 김성일군이 장학금을 기부하게 된 마음을 솔직하게 밝힌 글입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받아보는 장학금이라서 기쁜 것은 물론이고, 이 돈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잘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철없는 생각에 그 동안 내가 사고 싶었던 것이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뜻 깊은 돈을 나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쓰면 좋을까 궁리하던 터에 아는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큰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욱 뜻 깊고 따뜻함이 묻어나는 곳에 기부하고 싶었다. 형식적이지 않고 더 실질적인 곳에, 더 도움이 되는 곳에. 그때 '해내장학회'가 생각났다. 해내장학회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몇 분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우리 또래의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는 아주 작은 장학회다.

그곳에 기부하면 어려운 친구들에게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졌다. 생각만 해도 이렇게 마음이 이렇게 울렁거리는데, 정말 그들을 위해 내 장학금이 아름답게 쓰일 것을 생각하니 기쁘고 즐거워졌다.

나는 내가 착하고 마음이 따뜻해서 장학금을 기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평소에 내가 남을 위해 크게 봉사한 일도, 또한 크게 도움을 준 일도 없는 것 같았다. 다만 고2가 되면서 알게 된 몇 분의 선생님들의 말없는 선행을 보고, 나의 철없는 욕심을 접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남을 위하는 마음이나 봉사정신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장학금 기부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기에, 앞으로 더욱 네 주위에 있는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것이다. 주고 베푸는 즐거움이 정말 크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김형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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