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겨우내 얼었던 흙을 비집고 올라오고, 눈꽃을 가슴에 안고 인내하던 나무들도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잠시 꽃샘추위로 움츠러들던 아이들도 날이 풀리면서 활기차게 움직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기는 한데 그 웃음 속에 아픔을 안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침 시간. 교실에 들어서자 한 아이가 눈을 발갛게 한 채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분위기로 보거나 아이의 성격을 보거나 누구와 다툰 것 같지 않은데 울고 있어 일단 분위기를 터트려봤습니다.
"야, 누가 이쁜 가을(가명)일 울린 거야. 누가 때렸어?"
"아름(가명)이가요. 아름이가 막 때렸어요."
아이들이 책을 보고 있던 아름이 이름을 대면서 웃습니다. 엉뚱하게 가을일 때린 사람이 된 아름인 멀뚱멀뚱하게 "저 아니에요?" 하며 날 바라봅니다. 그런 표정에 울고 있던 가을이도 미소를 짓습니다.
아이들에게 전달할 사항을 전달하고 가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눈이 발개진 채 가을인 또 울먹입니다.
"가을아, 너 무슨 일 있니. 눈이 발개지도록 왜 울어?"
"아니에요, 그냥요."
"정말? 아닌 것 같은데…, 말해봐 선생님이 도와줄 것 같으면 도와줄게."
그러자 한참을 뜸들이던 가을인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여러 생각이 나서 그냥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빠가 보고 싶다는 소릴 합니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눈물이 났어요."
마음이 여리고 웃는 모습이 좋은 가을이 입에서 '아빠가 보고 싶다'는 소릴 듣자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아이는 지금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얼굴은 일주일에 두세 번 본다고 합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진 다음 어머니를 본 적은 여덟 살 때 딱 한 번뿐이고, 줄곧 아인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어머니랑 존재가 먼 기억 속의 차디찬 인물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다고 어머니에 대한 어떤 기억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그런 차가움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한 것인지 모릅니다.
재혼을 한 아버지는 현재 새엄마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때 함께 살았으나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가을이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당연한지 모릅니다. 어제(14일)는 그 아버지와 전화를 오랫동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오늘 아침 아버지가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어깨가 축 쳐진 아이를 보며 생각합니다.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허전한 가슴을 메우는 아이가 어찌 가을이 뿐일까 하고 말입니다.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마음은 늘 울고 있는 아이들이 많음을 알지만 가끔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도 합니다. 그저 지켜보며 바르게 활달하게 생활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위로가 안 될 줄 알지만 가을이게 봄꽃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봄의 새싹과 꽃들에 대해 이야길 했습니다. 겨울을 이겨낸 봄꽃이 되고 나중에 튼실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서는 가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힘내자, 우리 자주 이야길 나누고" 하며 들여보냅니다. 힘없이 교실로 들어가는 가을이의 가녀린 어깨가 오늘은 더욱 작아 보입니다.
그래도 가을인 웃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깔깔대기도 하고 장난도 칠 것입니다. 그것이 힘듦을 이겨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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