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사소하고 작은 것이다

2007.04.05 16:39:00

공부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공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공부는 사소하고 작은 것이다. 이 경구 같은 말은 요새 내가 종종 교육현장에서 느끼게 되는 깨달음이다.

저 화려한 놀이공원, 저 현란한 텔레비전 쇼에 비하여 공부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가. 조용히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생각에 몰두하며 앉아있는 모습은 초라해 보이고 궁상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거기엔 작은 겨자씨 하나가 하늘을 덮을 만큼 큰 나무로 자라나듯 무한한 희망의 씨앗이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말을 모른다. 꽤 오래 전에 일본말을 배워보려고 기초일본어 교재를 구입해서 조금 본 일이 있다. 그때 언뜻 눈에 띈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지식`이라는 일본말인데 무엇인가를 잘게 쪼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설명이었다. 지금은 그 단어마저 잃어버린 상태인데 그 설명만은 오래 되었어도 잊지 않고 가끔 생각나 수긍을 하게 된다.

원자니 반도체니 광통신이니 나노기술이니 하는 첨단 기술이 모두 끝없이 작고 정교하게 쪼개는 것이 아닌가. 수백만 분의 일의 오차도 없이 정밀을 요하는 것이 아닌가. 지식, 즉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은 이렇게 작고 정밀한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 작은 것 속엔 무한한 에너지, 엄청나게 큰 영향력이 잠재해 있을 것이니 궁극적으론 그것이 작다고 할 수는 없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필자로서 학생들에게 누누이 공부를 강조하면서 종종 부딪히는 사례가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공부에 소홀하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의 차이라 할까. 공부하는 태도와 방법에서 무엇인가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이 있다. 즉 사소하고 작은 것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다. 교사가 설명하는 것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전자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메모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엔 거기에 부지런히 대처하기는커녕 그냥 놓쳐 흘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사가 어떤 용어 하나를 설명한다고 하자. 교사는 일일이 강조하지 않고 그 용어를 설명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 한다. 이 때 그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해한 학생과 그냥 흘려 넘어간 학생의 학습결과엔 당연히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 용어 하나가 사소하고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용어를 모르면 그 다음 학습이 불가능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 용어, 혹은 그 단어 하나가 수많은 연결고리로 작용하여 앞으로의 학습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중요하고 알아두어야 할 사항을 누누이 강조한다. 낱말의 뜻 하나, 수학 공식 하나, 문제 풀이 요령 하나를 지나는 말로 예사롭게 말할 수도 있다. 사소하고 작게 보일 뿐,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놓치지 않고 메모하고 이해하려는 학생과 놓쳐버리는 학생의 차이는 차후 그 실력에서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세상엔 무척 커 보이고 화려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사방에서 유혹한다. 인터넷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매스컴이 전하는 세상 풍경은 우리의 정신을 황홀지경에 빠트리기 십상이다. 공부문제만 해도 유학이니 해외연수니, 고액과외니 논술이니 하면서 우리의 넋을 뺏어갈 만큼 선정적인 내용 일색이다. 그러나 거기에 현혹되어 나를 망각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나의 위치, 나의 입장, 나의 방향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한없이 커 보이고 화려해보이고, 나의 현실과는 달리 화려하기만 하여 왕도처럼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공부는 작고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그 중요성을 깨달아 몰두해야 하는 것이 학습이다. 농촌이면 농촌, 중소도시면 또 거기에서 내 주어진 여건에 맞게 겨자씨 같은 작은 것이 큰 나무로 자라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주변의 작은 일부터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바로 학습의 왕도인 것이다.

없는 돈 무리하게 마련하여 부자동네의 행태를 기웃거린다든지 무리하게 해외연수를 계획할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무수하게 널려 있는 작고 사소한 지식의 소중한 원리들을 열심히 배워 익혀야 한다. 영어를 정말 잘 하려면 저 찬란한 학원광고 해외연수 알선업체의 현란한 돈벌이 전략에 말려들 것이 아니라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한권의 책속에 담겨있는 심오한 원리를 깨우쳐 나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대인들은 모든 것을 무조건 돈과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종교와 예술과 학문까지도 다 돈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려한다. 그럼으로써 성과를 거두기도 하겠지만 종교와 예술과 학문이 경제적 가치, 물질적 가치에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종속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 고유의 권위와 가치를 견지해야 한다. 돈은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서 작용해야지 목적이 된다든지, 상위의 가치를 파괴하거나 능욕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위해서 교육일번지로 가거나 해외로 떠난다 해도 그곳에서 저절로 학습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거기에 가서도 작고 사소하게 보이는 것에 매달려 정진할 때만이 소기의 목적은 이루어진다. 과학자가 저 자연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하듯이, 예술가가 삶의 제반 현상이나 자연 속에서 미적인 요소를 날카롭게 뽑아내어 작품으로 형상화하듯이 공부를 잘 하려면 교실에서나 도서실에서 작고 사소해 보이는 교과서의 내용, 참고서의 행간을 정교하게 이해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막연하게 높고 크고 먼 것을 바라보는 일은 저만치 목표로 걸어놓고 주변에 널려 있는 학습 자료에서 최대의 성과를 끌어내야 한다. 요새는 학습 자료가 넘쳐난다. 영어만 해도 인터넷, 교육방송, 각종 참고서, 테이프, 등 마음만 먹으면 쓰레기더미에서도 얼마든지 학습 자료를 구할 수도 있다. 그런 내 주변의 자료만 샅샅이 섭렵해도 전 세계의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할 수 있다. 과학자의 눈 예술가의 감각을 가지고 주변의 사소하고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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