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숨은 보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신영길. 평생 ‘글’이란 것을 써보지 않았던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평생 글쟁이로 살아온 저에게 ‘쿵’ 하는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글이 아니라 ‘시’였고, 단순한 시가 아니라 ‘무의식의 서사시’였습니다.”
매일 아침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아침편지를 보내주고 있는 고도원의 말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런 극찬을 하게 했을까. 그의 말대로 평생 글이란 것을 써보지 않았던 저자의 그 무엇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을까.
신영길. 그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 동료의 동생이다. 먼저 저자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물으며 그가 연재한 <신영길의 길따라 글따라>가 그냥 나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책을 끼고 살았다 한다. 상대를 나오고 제약회사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그는 늘 책을 가까이 했다. 그의 바이칼 여행기인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읽다 보면, 시와 소설 등 다양한 독서의 흔적들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정임은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세상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던 정임에게 최석은 아버지요, 스승이요, 그리고 사모하는 대상이 되었다. 자신의 가슴에서 싹트는 사랑의 강정을 일기장에 그려오던 정임이 폐결핵으로 입원하게 되고 최석이 일본으로 날아가 수혈을 해주고 돌아온다.” - <유정>에서
고등학교 때 이광수의 <무정>을 배웠다. 그러나 <유정>은 배우지 못했다. 작품 이름만 들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유정>을 읽었다. 그때 난 ‘왜 이 ‘유정’이 ‘무정’보다 유명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훨씬 감동적이고 재미도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때 읽은 부분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눈 쌓인 이국의 숲속을 헤매는 정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소설 속에서 정임이 머물렀던 민가가 바이칼 호수 근처였나. 저자는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유정>에 나오는 최석과 정임의 애틋한 사랑과 마음을 떠올렸는가. 바이칼과 사랑.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것만 같은 둘, 허면 그에게 바이칼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온 존재일까. 그에게 바이칼은 깨달음의 성소요, 그리움의 장소요, 삶에 위안과 희망을 주는 장소이다.
“깨우침을 얻는 성소(聖所)란 곳이 따로 있을까. 바이칼에 와서 보니 내 삶이란 것이 부초는커녕 먼지만도 못하다. 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눈물이 나왔다. 뜨겁게 흘렀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그랬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의 정체는 무엇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 누구에게 따져야 할지 몰라, 눈을 감았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단단하게 입을 봉하고 시간을 정지해버린 듯한 바이칼의 얼음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는 인생의 고난을 생각한다. 늘 부초 같다고 생각한 그의 인생이 이곳에서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 느껴진다.
어찌 그만 그럴까. 어찌 그만 고난의 삶을 살고, 어찌 외로운 삶을 살까. 우리네 인생이 결국은 부초처럼 떠돌며 고난을 만나기도 하고 외로움을 겪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에게 바이칼은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
“바이칼이 그리울 때는 한 사람을 볼 것이다. 타이타닉의 노파가 그러했듯이 나는 바이칼을 담고 살아갈 것이다. 바이칼이 내 눈 속에서 온전히 발하기를, 한 사람의 생애가 내 눈동자를 통해 아름답게 비추어지기를 기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 여자를 사랑했노라고 말할 것이다. 내 사랑이여, 나의 바이칼이여.”
바이칼에서의 마지막 오후, 그는 바이칼의 얼음 위를 걸으며 자신에게 바이칼이 무엇인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한다. 영혼의 정화수, 어머니의 태반, 겨울의 심장 같은 아름다움 언어를 연상하지만 관념의 파편에 불과한 그런 말들에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는 중에 마음이 평안해지며 바이칼은 그에게 사랑하는 여자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바이칼을 담고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바이칼을 담는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난 모른다. 바이칼을 직접 보지 않고 어찌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의 글과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바이칼로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에 빠진다. 그가 보았던 바이칼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충동에 빠진다.
난 그의 글을 두 번째 읽었다. 한 번은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연재된 것을 읽었고, 다시 책을 통해 읽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화면을 통해서 읽을 땐 스쳐가듯 읽는다. 그러나 종이에 쓰인 글을 읽을 땐 생각하고 때론 눈을 감고 생각하며 읽는다. 그래서 그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시적 아름다움을 지닌 일종의 수필이다. 그 속엔 어린 시절 진안 산골에서 두 손 호호 불며 연 날리는 어린 시절도 있었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도 들어 있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 속에 담긴 인생의 쓸쓸함도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말이 더욱 마음에 닿는다.
“그래, 이제는 춥다고 하지 말자. 지난 내 삶이 쓸쓸했던 것은 나 자신만을 생각하다 보니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바이칼을 세속을 피해서 영혼을 정화하는 피정 같은 곳이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아픈 영혼을 씻어주고 쉼을 줄 수 있는 곳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지친 삶의 짐을 벗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짊어왔던 삶의 짐짝들을 벗어던지고 나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꿈을 주는 곳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우리네 삶의 무거운 짐을 꼭 바이칼에서만 벗어놓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마음 속에 바이칼 같은 호수를 담고 있으면 우리가 어디에 있건 그곳이 새 희망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책장을 덮으니 뒤 겉표지에 적혀있는 피천득 님의 ‘참 좋다. 그 한 마디면 족해. 정말 좋다’가 자꾸 내 눈길을 잡아끈다. 참 좋다. 신영길의 글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