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타파에 교육계가 앞장서자

2007.07.23 09:25:00

“아빠는 지금 나의 실력을 무시하고 있는 거야!”

딸이 아빠에게 대드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고 미(美)국무성 교환학생으로 다녀와 영어에 자신감이 넘쳐 특목고를 목표로 공부하는 딸에게 진로 이야기를 하다가 “사이버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아빠의 말에 그만 흥분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 중학생들 사이에도 대학교 서열이 이미 매겨져 있다. 사이버대학은 지방대학만도 못한 형편없는 대학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것이다. 유명대학이 아니면 사회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한 평생 기를 못 펴고 살아가는 운명이라고 누가 가르치기도 했단 말인가!

나의 의도는 사이버대학을 나와도 사회에서 훌륭히 성장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고 내 자식이 잘못된 사회통념을 통쾌하게 깨뜨려 줄 능력이 있고 그러하기를 바라고 한 말이었는데….

유명대학 아니면 인정 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

동국대학교 신정아씨의 '가짜 학사, 석사, 박사'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자진 고백'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에서 학ㆍ석사 학위를 받았다며 KBS 라디오의 ‘굿모닝 팝스’를 진행해 온 이지영씨가 고졸 학력자임을, 인기 만화가 이현세씨가 고졸 학력을 대학 중퇴라고 속였던 사실을 고백했다. 또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씨도 학원 강사 시절 학생들 사이에 서울대 졸업생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부인하지 못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언론에서는 허술한 학위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우선 개별 대학이나 채용 기관에서 학위를 엄격하게 검증하는 시스템이 설치돼야 한다. 검증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사건이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탓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실력보다는 '간판'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다. 실력이 없어도 '간판'만 따면 그것을 보고 사회가 '간판'을 인정한다. 이번 사건은 학벌위주의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뿌리 깊은 '학벌ㆍ학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일도 시급하다. 고졸자는 사회에서 사람 취급도 아니하니 서러워서 살아가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아울러 학력만능주의라는 허울도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한다. 학벌 위주의 사회 풍토 때문에 너도 나도 대학 입시에 목숨을 건다. 게다가 외국 학위라면 덮어놓고 대단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것이 가짜인 줄도 모르고.

학력보다 실력을 중히 여기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교육계가 앞장서야 한다. 특히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간판'을 중히 여기는 발언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을 해야 한다. '간판'을 중시하고 그 '간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다.

선생님이나 강사 소개시 출신대학은 빼야

학벌 타파를 위해 교육계에서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 신규교사나 전입교사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출신학교를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교사가 된 것은 출신학교로 된 것이 아니다. 교원자격증을 취득하고 임용고사를 당당히 통과하여 된 것이다. 그러니 구태어 출신학교를 따질 필요가 없다. 학연(學緣)을 강조하는 것은 지연(地緣)을 중시하는 후진국형 지역 패거리주의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신규교사나 전입교사의 무엇을 소개할까? 신규교사는 과목, 전입교사는 전임교와 과목 등을 소개하면 된다. 어느 학교에서는 출신 대학원까지 소개하기도 하는데 요즘 선생님들 대부분 석사이다. 이런 소개를 들으면 자칫 학력 인플레이를 당연시하게 된다.

각종 연수나 연수원 등에서 강사를 소개할 때 출신학교를 빼야 한다. 전공과 저서 등은 강의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출신학교 소개는 학벌위주의 사회 분위기만 조장할 뿐이다. 출신학교로 강사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강사 실력이 중요하지 출신학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난 대그룹에선 이력서에 이미 ‘출신학교란’이 없어진지 오래다. 거기까진 가지 못하더라도 교육기관과 연수기관에서 교사와 강사를 소개할 때 출신학교 소개만 하지 않아도 잘못 나가는 학벌위주의 사회 분위기를 바로 잡는 데 일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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