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촉망받던 어느 대학 교수가 학력을 속인 것이 탄로나 국내․외 망신을 당해 교수 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긴 일이 있었다. 여기에 보태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스스로 밝혔음) 모 방송국 아침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유명 영어강사와 만화계의 유명작가 또한 학력을 속인 것을 커밍아웃하여 사람들을 이중삼중으로 놀라게 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면서도 가슴 한쪽에서는 서글픔이 몰려온다. 그 대학 교수는 비록 고졸이었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해주는 미술관 큐레이터였다고 한다. 거기에다 외국 유명대 석사 출신이라는 가면은 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드는 신기루 구실을 하지 않았나 싶다. 유명 만화가 또한 가끔 기자들이 새로운 책을 낼 때 '역시 모 예술대를 중퇴해서 그런지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뒷머리가 근질거렸다고 한다. 방송진행자인 영어강사도 비록 고졸이었다지만 타고난 언어 감각을 갖춰선지 외국생활 몇 년 만에 상당한 영어 실력을 갖춘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진실을 속여 가며 행동했던 것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사람을 속여 가며 죽음의 학벌사회에 무임승차하려한 비도덕적인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보이도록, 믿고 싶도록 만들어 놓은 사회 환경과 사람들의 속물근성은 한번 곰곰이 반성해 봐야 할 일이다.
그 사람의 진정한 실력이나 인품은 보지 아니하고 간판에 기대어 실력도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편견을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조차도 그러한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특히 지방직 공무원을 하다 보니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가 못배운것을 풀어주고 나 자신의 실력계발을 위해서,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교육계를 점하고 있는 대다수 교원과의 학력에 뒤지지 않기 위해 대학원까지 다닌 일까지…….
적어도 인사기록에 학력난 하나를 더 채우는 것이 그 무슨 경쟁력이 되겠냐마는 이 지독한 학벌중심 사회와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할 용기가 없는 것이 빚어낸 일일 것이다. 교육계에 들어와 보면 그러한 서글픈 일을 목격하곤 한다. 학교업무와 학생 가르치기도 바쁜 40 중반을 넘긴 부장교사가 낮의 수업을 마치고 파김치가 다되어 야간 대학으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모습을. 비록 일주일에 두 번 이라고 하더라도 보통 마음이 아니라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 이유가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많지만, 승진에 유리하고 공교육 불신으로 인한 학교와 학부모의 불만을 뛰어 넘기 위한 방편으로 대학원 석․박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은 슬픔을 넘어 처참함마저 느껴진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교사라 하더라도 왠지 석사학위 하나 없다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교사가 있냐는 표정을 짓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그 교수나 방송 진행자, 만화가를 좋아 한 것은 학벌로 인하여, 또는 실력도 좋으니 좋은 학벌을 가졌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현혹효과를 일으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동화속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그것이 훌륭한 옷이다라고 주장하면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도 박수치고 그것에 굽실거렸던 신하들처럼 우리들도 거기에 맞춰 부화뇌동하지 않았는지 가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사회에서도 이제는 어느 대학을 못가면 사람 대접을 못받을 거라는 학벌 만능주의를 조장해서는 안된다. 어떤 리포터가 얘기했듯이 '서울대 보내야 일등 선생이지'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도록 잘못된 생각은 과감히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