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오면 해마다 북쪽 지방의 철새들이 남쪽으로 몰려온다. 그런데 이 철새 중에는 따뜻한 새봄이 와도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는 새가 있다고 한다. 남쪽 지방의 주민들이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고 먹이를 풍부하게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새를 쿨버드(Cool Bird)라고 한다고 한다.
이는 열정과 본능이 식어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야성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난관에 도전하는 새를 핫버드(Hot Bird)라고 한다고 한다. 이는 열정과 본능에 충실한 사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 말은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처음 쓴 말인데 요즈음 교단의 우리들 모습과 겹쳐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새 우리들은 쿨버드(Cool Bird)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교실 현장을 제약하는 여러 요인에 의하여 어느 덧 관행과 시류에 익숙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열정과 본능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꺾이게 되어 어느 사이 쿨버드(Cool Bird)가 된 것이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떠들어도, 못된 행동을 하고 다녀도 그들을 따끔하게 지도할 묘안이 없는 게 사실이다. 잘못된 행위의 본질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지도상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비난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의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생기는 문제는 항상 마지막 피해자는 선생님으로 귀착되고 있다. 학교의 지도 잘못이나 또는 처리의 잘못으로 학부모의 반발에 직면해야 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공교육을 위축시키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학생들의 이기적 성향, 학부모의 자녀 중심적 사고, 그리고 사회의 그릇된 인식 등으로 야기된 학교 현장에 대한 비교육적 편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학부모에게 구타당하는 선생님이 여전히 있고,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선생님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선생님 자신이 자초한 것도 있다. 조금만 배려하고 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이러는 사이에 선생님들은 열정과 본능을 잃어버리지 않나 싶다. 선생님의 본능이란 진실과 정의를 일깨우는 교육적 사명을 이르는 말이다. 괜히 잘못하여 학부모의 불만을 사게 되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봉변을 당해야 하고, 때로는 학부모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수모도 당해야 한다. 생활지도 과정에서도 늘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최근에 일어난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사례를 보면 선생님의 잘못으로 야기된 부분도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과잉대응으로 일어난 경우가 많다. 매일 이런 사례를 접하면서 선생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쿨버드(Cool Bird)로 변모해 가는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적이 낮은 아이를 남겨 놓고 공부를 시켜도 인권 침해, 자율학습을 하게 하는 것은 건강권 침해, 지각생 단속으로 벌을 줘도 인권 침해, 체험학습 등 단체 행동이 필요할 때 늦은 학생을 나무라면 차별 대우 등등 교사의 본능을 왜곡하는 해석들이 난무하는 한 교사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말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쿨버드(Cool Bird)가 되어 버린 것이다. 교직 입문기의 열정과 본능은 현실의 벽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점차 열정과 본능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고 만다. 학부모와 사회가 억제하고 간섭하는 대로 따라가다가 어느 사이에 우리는 교편도 잃어버렸고, 교권도 잃어버렸다.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교육력이 약화된 현실을 걱정하고 있는데도 교육당국에서는 어떤 대책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핫버드(Hot Bird)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땅의 선생님들이 핫버드(Hot Bird)로서 역할을 다할 때 우리 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 말로는 ‘공교육의 위기’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열정과 본능이 식지 않은 선생님이 활기차게 교육활동을 펼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열정이란 뜨거운 가슴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본능이란 교사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다. 선생님 스스로도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각고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울러 선생님의 본능을 일깨우는 교원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두들겨 맞고, 학생에게 왕따당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본능에 충실할 수 있을까.
송일섭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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