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力’은 없어도 ‘學歷’만 있으면 통하는 나라

2007.08.16 11:50:00

최근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통하며 잘 나가는 한 젊은 여교수로부터 시작된 학력위조 사건이 방송계, 연예계, 문화계, 학원계 등으로 급속히 파급되는 등 이른바 ‘위조 신드롬’이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다. 학력을 속인 사실이 이처럼 연달아 밝혀지는 것은 전례 없는 현상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정보화·전문화되면서 과거보다 사실 확인이 손쉬워진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사회나 학력 중시 현상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작금의 현상은 이를 넘어 학벌이란 간판을 신앙처럼 숭배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앞으로도 우리사회가 어렵게 고생하며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 졸업장이 개인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계속 존재하는 한 언제나 불거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한다.

실력이 없어도 학위만 있으면 손쉽게 출세하는 길이 있는데 학력위조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구지 국내외 명문대를 졸업하지도 않고 위조된 ‘짝퉁 졸업장’만으로도 지식인 사회에서 통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學力은 없어도 學歷만 있으면 된다’는 우리 사회의 ‘학벌 위주’ 풍토를 비웃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며칠 전 한 방송사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30대의 20% 이상이 구직 시에 학력 위조의 유혹을 느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대학입시 과열로 인한 사교육의 팽배, 입시부정행위, 명문대의 부정입학 등도 모두 우리 사회에 만연된 ‘學歷위주’, ‘학벌 중시’ 풍토의 부작용이다. 이는 실력을 보지 않고 학력이나 ‘동문’ 따위의 특권의식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고학력자와 자격증을 가진 자들이 한 잘못에 대하여는 지나치리만큼 관대한 사회분위기도 문제다. 그러나 사회 풍토가 아무리 ‘학벌 중시’ 풍토로 병들어 있다고 해서 위조학력과 가짜학위로라도 선망의 조직에 끼어들어 신분상승을 하거나 출세하고 싶었던 그들의 행위를 옹호하거나 가짜 행위를 두둔 또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

혹자는 “학력이나 학위를 위조했다하더라도 아무 탈 없이 실력 있는 교수로, 학원에서 잘 가르쳐서 대학 합격 잘 시키고 능력 인정받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지금에 와서 그들이 학력을 다시 사실대로 밝혀낸다고 능력이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라고 할 지 모른다. 다시 말하면, 그 능력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다면 졸업장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회가 그들을 받아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이는 중앙선을 침범하고도 사고나 적발 없이 잘 달리면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교육적으로 보아도 만약에 부모가 “공부만 잘하면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자녀에게 주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성적을 속이는 방법을 쓰게 될 것이다. 이는 능력을 평가하는 최고의 잣대로 학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면 학벌을 위조하고픈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學歷위주’, ‘학벌 중시’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이 참에 이런 파렴치한 사람들의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능력이 있어도 대접 못 받는 사람, 망국병인 학력의 편견에 대한 희생자가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용납하면 정직한 사람이 인정받고 성공하는 그런 사회가 되기보다는 헛된 신기루를 쫓거나 기회주의자가 판치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學歷이라는 자격증보다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마음껏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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