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시'라는 청마의 '首'를 다시 읽는다

2007.11.26 09:48:00

                       

                                    柳致環

十二月의 北海 눈도 안오고
오직 萬物이 苛刻하는 黑龍江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街城 네거리에
匪賊의 머리 두 개 내결테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少年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寒天의 模糊히 저물은
朔北의 山河를 바라보고 있도다
너희 죽어 律의 處斷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四惡이 아니라
秩序를 保全하려면 人命도 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희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威協을 意味함이었으리니
힘으로서 힘을 除함은
또한 먼 原始에서 이어온 피의 法度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生命의 險烈함과 그 決意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수 없는 無賴한 넋이여 暝目하라!
아아 이 不毛한 思辨의 風景위에
하늘이여 思惠하여 눈이라도 함빡내리고지고

청마의 친일시라는 '수'를 두 가지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내 설명이 틀렸으면 틀린 점을 지적하여 주기 바란다. 청마의 시 '전야' '북두성'보다 더 자주 도마 위에 오르는 작품이다. 우선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견해로 이 시를 산문 형식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비적을 항일운동단체로 보는 견해다.

                        머리
                                                  유치환

12월의 북해도 눈도 안오고 오직 만물이 가혹한 시각을 견디고 있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이 불어오는 헐벗은 작은 가성 네거리에 대일본제국에 항거하던 항일독립군의 머리 두 개가 내걸려 있나니 그 검고 푸른 얼굴은 말라 어린애의 얼굴처럼 작고, 반쯤 뜬 눈은 먼 차가운 하늘 막막하게 저문 삭막한 북쪽 산하를 바라보고 있다.

너희들은 죽어 위대한 대일본제국의 법률에 의해 처단되었다는 그 준엄함이 어떠한지 이제 알았는가. 이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나쁜 네 가지 일, 즉 논어에서,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일, 훈계하지 않고 잘못을 꾸중하는 일, 명령을 내리기를 게을리하다가 후에 서두르는 일, 사람에게 인색하게 구는 일과는 별개로 대 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위대한 질서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목숨 따위 닭이나 개의 목숨과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혹은 너의 항일 단체의 무장 항거를 그대로 묵과하여 살려두는 것은 바로 우리들 선량한 대일본제국의 백성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니 대일본제국의 무력의 힘으로 너희들 항일운동 단체의 힘을 제압하는 것은 또한 먼 원시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생존의 법칙이 아니겠느냐.

내가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험난하고 맹렬함과 새로운 마음의 다짐을 깨닫기도 하나니 끝내 다스릴 수 없었던 너희 무장 항일집단의 부랑배의 넋이여, 이제 눈을 감아라. 아 아 이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생각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은혜를 베풀어 눈이라도 소복히 뿌려주소서.

시의 전개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어떤 깊이도 없고 바보천치같은 비아냥거림이 있을 뿐이다. 다음은 전혀 친일과는 무관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산문 형식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머리

                                                                                           유치환

12월의 북해도 눈도 안오고 오직 만물이 가혹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이 불어 헐벗은 이 작은 가성 네 거리에 도적의 무리 머리 두개가 내결려 있으니 그 검고 푸른 얼굴은 말라 어린 아이처럼 작고 반쯤 뜬 눈은 먼 차가운 막막하게 저물어가는 삭막한 북쪽 산하를 바라보고 있다.

너희 죽어서 인간세상의 준엄한 법의 처단함이 어떤 것인지 이제 알았느냐. 이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나쁜 네 가지 일. 즉 논어에서,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일, 훈계하지 않고 잘못을 꾸중하는 일, 명령을 내리기를 게을리하다가 후에 서두르는 일, 사람에게 인색하게 구는 일과는 별개로 인간사회의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닭이나 개의 목 숨과도 같지 않겠느냐.

혹은 너희 도적들의 삶은 곧 선량한 백성들이 죽을 수도 있는 위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질서를 보전하기 위한 정의의 힘으로 무참하게 인간세계의 질서를 짓밟는 무리들을 제압하는 것은 먼 원시에서 부터 이어져 온 생존의 법칙이 아니겠느냐.

내가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험난하고 맹렬함과 새로운 마음의 다짐을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었던 도적의 무리 부랑자의 넋이여, 이제 눈을 감아라. 아 아 이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마음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은혜를 베풀어 눈이라도 소복히 내려주소서.

생명을 존중한 시인의 시에 쓰인 친일이라는 낙인

유치환은 생명파 시인이다. 시인에게는 시인의 시정신이 있다. 그만의 시혼이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항일 무장전사들에게 한 시인이 제 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철부지 아이처럼 조롱을 퍼부으며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시는 항일무장단체 일원의 높게 걸린 머리를 보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처형 후에 내걸린 도적의 머리를 보고 목숨에 대한 소중함과 안타까움을 읊은 시가 틀림 없다. 청마의 시 중에는 한국전쟁 당시 적의 시체를 바라보며 목숨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유사한 시상의 시도 있다.

시는 시로 읽어야 한다. 시를 어떤 불온한 전단을 읽듯이, 비밀 문서를 해독하듯이 이상한 방향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시를 읽는 근본 방법부터 고쳐야 한다. 낳고 자란 조국을 헌신짝처럼 버리고도 모자라,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죽어 높게 내걸린 머리를 놓고 아이들이나 천치바보처럼 비아냥거리는 청마를 상상하다니! 끔찍한 일이다. 유치환 시인이 백치아다다라도 된단 말인가. 하루 빨리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는 시로 읽어야 하고 유치환은 유치환으로 읽어야지 백방으로 뛰어 기어코 비적을 무장항일독립군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저의는 시인이라는 한 개인 이전에 문학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900여 편에 달하는 시 중에 단 한 편도 확실한 친일 성향이 없는 한 훌륭한 시인의 시정신을 이렇게 무참하게 훼손시켜 어떤 득이 있을 것인가.

시는 시로 읽고, 유치환시인은 유치환시인으로 읽어야

역사에 전무후무할 오직 하나인 청마의 작품을 국민들로부터 빼앗아 역사의 음습한 구석으로 밀어넣어버리려는 저의는 무엇인가. 그것이 애국심에서 비롯되었는가. 아니면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충정에서 비롯되었는가.

사람들은 착각을 하기 쉽다. 우리 신앙인은 모두 자기가 순교자의 후손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신앙을 박해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박해자의 후손이기도 한 것을 망각하고 있다. 마귀는 한때는 천사였다 하지 않는가. 자꾸 구호를 외치고 논란을 불러일으켜 국민들의 마음에서 한 위대한 시인을 몰아 내면 국민들은 어디서 그 문학의 향기를 다시 접할 것인가.

나는 당신들이 백번 천번 친일을 외치고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여도 청마의 글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윽한 감동에 젖어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친일을 논할 때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근 100여 년의 역사에 걸쳐 나온 대한민국의 가장 훌륭한 문인들에게 모두 혐의를 씌워 어둑한 골방으로 모두 몰아넣는다면 국민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모윤숙의 '렌의 애가'를 읽으며 사춘기를 보냈던 사람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연애편지에 삽입했던 사람들, 유치환의 '행복'을 떠올리며 아련한 그리움에 젖었던 무수한 독자들에게 어떤 절망감을 안겨주려고 자꾸 문제를 침소봉대하여 들고 나오는 것인지 답답하다.

친일이 나쁜 줄은 다 안다.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 때문에 우리 백성이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다 안다. 그러나 그들 친일 인사들도 우리 민족이고 우리 선조다. 그들의 후손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할 같은 동포다. 잘못은 인정하고 반성하고 뉘우쳐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다짐하고 노력해야 한다. 반성하고 뉘우치는 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또 다른 죄악이며 민족에 대한 또 다른 배반이다.

다시 그분들의 작품에 빠져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사람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 신이 아닌 인간은 모두 죄를 저지를 소지를 안고 있다. 상황에 따라 친일이 아니라 매국행위도 살인행위도 할 수 있는 소지를 우리 모두는 다분히 갖고 있다는 얘기다. 모든 선악의 기준을 친일이냐 아니냐에 맞춰 절대적 기준으로 삼으려 하는 것에 오류는 없는지 한번쯤 살펴보야 한다.

그리하여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아, 그분들이 불행한 시대의 선조들이었구나" 하고 이해와 관용의 눈길로 바라보야야 하는 날도 꼭 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나를 저 신앙 박해 시대의 신앙 선조들의 위치에 놓아보는 일이 있다. 만약에 내가 그 시대의 신앙이었다면 그분들처럼 아름답게 순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가끔 나를 일제치하의 문인으로 가정해 보는 때가 있다. 나는 어떤 문인이 되어있을까. 친일을 했을까. 목숨을 걸고 항거했을까. 나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전율하고 만다. 그 당시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나는 얼마든지 친일도 했을 것 같고 또 목숨 걸고 항거도 했을 것 같은 두가지 상황 설정에 그만 전율하고 마는 것이다.

독립 이후에도 그토록 치열하게 문학을 했던 분들의 숭고한 열정에 무한한 애정과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 않는가. 답답하다. 다시 그분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독서삼매에 빠져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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