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문제 오답 사태를 보며

2007.12.28 11:42:00

어느 중학교 국어교사가 겪은 일이다.
학생들에게 주관식 점수를 불러 주고 난 뒤에 한 학생이 점수가 이상하니 직접 확인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래서 무엇이 이상하냐고 했더니 학생이 점수표를 보더니 그랬단다.
“이것은 틀렸는데 맞았다고 했어요. 14점이 아니고 13점이 맞습니다.”
“너의 원래 점수보다 많았음에도 확인한 이유가 뭐냐? 가만히 있어도 1점이 이득인데.”
대답은 간단했다. “정직해야지요.”
어떤 학생은 틀린 것도 맞았다고 우기거나 또는 다른 학생의 답을 훔쳐보고 제 실력 이상의 점수를 얻으려고 하는데 그 학생은 달랐다.

그래서 그 교사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다른 학생과 달리 정직한 이 학생의 점수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학생들의 답은 크게 두 갈래로 나왔다. 13점으로 하자는 학생은 점수는 줄었지만 도덕성에 있어서 이미 점수를 받았고, 그 친구는 이미 마음이 뿌듯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4점을 주장한 학생은 길에서 돈을 주워도 일정액의 보상을 해주는데 이런 사례에도 정직함을 인정하여 14점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13점을 주장한 학생이 그 친구는 보상받으려고 점수 확인을 한 것도 아니고 이미 무형의 보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어땠을까.
그 교사는 점수를 어떻게 주려고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 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점수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주어야 하고, 틀린 것을 맞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학생들에게 이러한 것을 물어본 후 정직함이라는 것을 몸소 가르치려 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13점을 주었다.

참으로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주었던 그 교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용장(勇壯) 밑에 약졸(弱卒)이 없다고 했던가. 그런 훌륭한 교사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기에 현명함을 말할 줄 알았고, 학생들은 그것에 대해 수긍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우지 않았나 한다. 만일 이른바 포퓰리즘에 현혹되어 교사나 학생들이 그른 판단을 하였다면 정정당당함은 그 빛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우는 조금 다르긴 해도 요즘 수학능력시험 문제 중에서 과학탐구영역 물리 문제 하나가 정답이 바뀌어야 한다고 한국물리학회에서 발표를 한 모양이다. 문과출신이라서 물리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옳다 그르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권위성을 인정받는 물리학회 소속 교수들의 주장인 점, 이번 문제의 내용과 유사한 내용이 모의 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되었던 점, 다른 일부 물리 교과서에도 이번 문제에 대해서 기술된 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해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정답 불인정 주장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지 않나 한다.

평가원에서는 복수 정답으로 인정할 경우 발생할 후폭풍을 염려하여 군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본다. 더욱이 학문의 분야에 대해 더 깊숙이 공부한 학생들이 얕게 공부한 학생들에 비해 피해를 봐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문제의 오류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사전에 이의 제기를 하고 항의를 수차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에 있어서 제대로 된 검증이 되었나 하는 것도 재검토해 봐야 할 일이다. 현직교사와 대학교수로 이루어진 검증단에서 이상이 없다고 했더라도 사소한 문제점이라도 있으면 권위있는 기관에 재검증을 의뢰하는 등 제삼, 제사의 검증을 거쳐 혼란을 막아야 하는 것이 현재의 큰 혼란을 막는 첩경이었음을 왜 인지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혹자는 정답을 정정할 경우 대학의 정시모집과 수능 등급의 변동으로 인해 큰 혼란과 입시에 차질이 있다는 현실적인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어떤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옳고 그름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러한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다면 왜 학생들에게 고등학문으로 가는 관문인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도록 하였는가. 단지 대학을 들여보내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도구로써만 수능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특히, 자연과학이라는 것은 인문과학처럼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법칙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 물리학 아닌가. 조금 더 나아간다면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도록 부도덕한 정권이 강요해서 굴곡된 역사와 교육이 흘러왔음은 먼 세월의 얘기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그 문제를 정답으로 맞혔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닌 사실관계의 문제다. 소송으로까지 번져서 일이 커지기 전에 평가원은 자기기인(自欺欺人)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가원에서 문제출제 오류를 인정하고 성적표를 재발송하는 것과 평가원장이 사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기사(연합뉴스, 2007.12.24. 기사참조)가 나왔다는 것이다. 만시지탄의 아쉬움은 남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혼란스런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검토하고 대비했었더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뻔'한 격을 만들었다는 것이 아쉽다. 아울러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입시절차인 새로운 성적표 발송과 정시모집 지연과 같은 행정처리 미숙에 대해서는 최대한 빠른 수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백장현 교육행정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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