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하면 학력신장 되나

2008.01.07 08:54:00

학교에서 매년 실시되는 정규고사(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고 각 학생들의 성적을 본인은 물론 학생들 전체에게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 40대 중반 이상인 국민들은 예전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끔찍한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모의고사를 실시하고나면 1등부터 꼴등까지의 성적이 학교 게시판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던 기억을.... 물론 학교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교,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흔하게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 성적이 공개된 것을 보고 그 다음에 피나는 노력을 하여 성적을 눈부시게 향상시켰던 기억은 그리 흔하게 찾기 어렵다. 도리어 그에대한 반감만 더 키운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역효과가 컸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대적 변화를 따라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런 고전적인 공개수법은 통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누가 사교육의 힘을 조금 더 받았는지에 따라 성적이 결정된다고 굳게 믿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전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학력평가를 치르고 그 결과를 학교별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행 교육청별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 시행령을 수정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학교별로 공개하여 어느학교가 학생들의 학력이 높은지를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이 학력신장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학교의 서열화를 통해 서로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간의 서열화가 최소한 학력이라는 부분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학력이 높게 나타난 학교가 학력이 낮게 나타난 학교보다 학생들의 선호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수위원회에서 기대하는 효과일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선학교에서는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고 결국은 많은 학생들의 학력신장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도 인수위의 기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를 얻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절대적인 학력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수년전에 서울시내에서 고등학교 선발고사를 실시하고 있을때, 중3학생은 매년 3-4회의 모의고사를 실시했었다. 모의고사가 실시될 즈음이면 일선학교의 3학년 교실은 교과진도를 멈추고 모의고사 대비에만 올인했었다. 그 이유는 다른학교에 비해 성적이 낮게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모의고사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이 결정되었지만 그것이 학교의 좋고 나쁨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었다. 더우기 교과진도를 정상적으로 나간 학교의 경우와 오로지 모의고사만을 위해 준비한 학교의 차이는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었다.

전국의 모든학교를 대상으로 학력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학교별로 공개하도록 한다는 방안이 궁극적으로 학력신장에 목표가 있다면 이 방안은 무조건 시행해서는 안된다. 예전의 모의고사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는 오로지 학력평가대비만을 위해 올인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른 그 어떤 교육활동도 접어둔 채로 모든 교과와 모든 교사들이 학력평가만을 위해 매달리게 된다면 우리가 그렇게 원하던 교육정상화는 도리어 더 멀어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궁극적인 학력신장이 아니고, 일시적인 학력신장을 위해서인 것이다. 

무조건 공개해서 우열을 가린다고 학생들의 학력신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우기 현재의 각급학교 교육여건이 서로 같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평가만 일률적으로 실시하여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불공평하다. 가령 냉,난방시설이나 특별교실 시설, 학생들의 편의시설, 교실의 멀티미디어 시설등이 학교마다 다른 현실에서 오로지 학력평가만을 가지고 학교를 서열화하는 것은 결코 옳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전국의 모든 학교가 똑같은 여건에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여건개선을 한 후에 실시되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학교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학력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력평가를 일률적으로 실시하여 학교들이 무조건 학력평가의 결과만 잘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도록 할 것이 아니고, 이정도 투자에 이정도 여건에서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스스로 느끼도록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경쟁만 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만일 각급학교에서 실시되는 정규고사의 성적을 모든 학생들에게 개인별로 공개하면 그 학생의 학력이 눈부시게 향상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무조건의 경쟁에서는 포기하는 학생들이 일정비율 나타나는 것이다. 학력평가에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여건을 가진 학교는 포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건개선을 우선시 해야 하는 이유이다.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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