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전봇대를 만들어서야

2008.01.30 13:44:00

전봇대에 대해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전선(電線), 또는 통신선을 늘여 매기 위하여 세운 기둥으로 전선주(電線柱), 전신주(電信柱), 전주(電柱)로도 불리며, ‘키가 큰 사람’을 농으로 이르는 말이란다.

요즘 이 단어가 대통령 당선인의 한 마디로 새로운 의미로 고유명사화 된 느낌이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걸림돌’, ‘탁상행정’, ‘패배주의’ 등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크게 대두되었던 ‘대불공단의 전봇대’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게 있다. 몇 년째 선박용 블록 생산업체들의 민원이던 전남 영암 대불공단의 전봇대 두 개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말이 나온 지 이틀 만에 비오는 날씨 임에도 뽑혔다. 물론 국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끼치고, 쓸데없이 존재하는 규제라면 당장 철폐해서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야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탁상행정에 대한 질타’ ‘현장주의’라는 칭송이 쏟아진 이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만 볼 것만이 아닌 이면의 다른 문제도 있기에 몇 마디 하고자 한다.

대불공단 최초 입주시기에는 선박조립 업체들이 없다가 2000년대부터 대형 선박조립업체가 입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재와 같은 전봇대 문제가 발생할 것이 예측되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대불공단 입구에 보면 몇 개의 다리가 있는데 애초에 설계될 때는 현재같은 대형선박 블록을 싣고 다니는 대형트럭을 버틸 만큼 설계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행정이라는 것이 몇 십 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탁상행정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의 십자포화를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맞을 일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더욱이 그 뽑혔던 전봇대가 당선인이 말한 전봇대인지도 불분명하다고 한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한국전력과 지방자치단체, 입주업체 사이에 전봇대의 지중화 관련 비용에 관한 분담 문제도 걸려 있다. 당선인이 좋아하는 시장의 기능에 맡긴다면 업체가 분담하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앞에 말한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모두 묻혀 버렸다. 이 문제가 단순히 정부의 규제완화 실패 사례로 언급되면서 공무원의 책임회피 행태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마치 연두순시니 뭐니 하면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권위주의 냄새가 짙게 베어 나오는 과거의 음습한 모습이 다시 부활해서야 되겠는가.

아울러 대통령 당선인이 현장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해결하는 것이 나쁠 수는 없겠지만 대불공단 문제의 경우에 국가가 직접 나서서 예산을 들여가며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국고를 들여 해결한다는 것은 해당업체에게 보조금을 제공한 모양이 되고, 그럼으로 인해 생산단가의 하락으로 납품을 받아 선박을 만드는 대기업의 배만 불려준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불공단 전선 지중화 문제는 대불공단의 선박블록 생산기업에 하청을 준 대기업과 대불공단의 선박블록 생산기업들이 전선 지중화 때 절감되는 비용이 지중화 비용보다 큰지 작은지를 판단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선인이 굳이 한몫을 하고 싶다면 대불공단의 선박블록 생산기업에 하청을 준 대기업에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라고 재촉하는 데 그쳐야 했었다.

현재 우리나라 조선업이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이루어서 조선업 도시인 거제도는 지나다니는 개도 만 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호황을 누려서 많은 이익을 남긴 대기업들이 하청을 준 업체들의 비용절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한전, 지자체, 산자부 공무원들만 쥐 잡듯 잡아서야 되겠는가? 초점이 안 맞아도 한참 맞지 않았다.

비단 이 사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쏟아 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철회되었지만 ‘영어 몰입식 교육’ 문제가 아닐까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검증을 거친 후에 내놓아야 할 중요한 교육정책을 한 두 명의 인수위 위원과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마구 쏟아 낸다면 이는 또 다른 전봇대를 박게 되는 결과가 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개혁과 혁신은 쉼 없이 꾸준하게 해야 하지만 너무 급하게 간다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조금 답답해 보일 수는 있어도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면서 사람생각 하며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장현 교육행정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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