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만 되면 신춘문예 신드롬이 한바탕 기세등등하다가 잠잠해지곤 한다. 곧 없어질 것으로 예상도 해보았는데 여전히 존속되고 있는 신춘문예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행여나 하고 신춘문예 모집공고를 기다리고 작품을 가다듬으며 올해는 반드시 행운의 주인공이 되리라 다짐해보는 것을 연례행사처럼 치루는 문학지망생도 많을 것이다. 아마 수천 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나는 자신하건데 우리 문학사의 명작들이 과연 신춘문예 심사대에 오른다면 당선이 되었을까 가늠해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해마다 쏟아져나오는 많은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그 문학성과는 상관없이 어쩌면 요구되는 조건에 맞춰 한껏 치장하고 미인대회 무대에 오른 미인들이라는 생각이 얼핏 든다. 그런 인공의 미인들에게서 어떻게 본래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뽑힌 미인대회의 입상자들 보다는 길거리나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선남선녀에게서 진짜 미인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춘문예라는 제도가 존속되려면 문단의 등용문이라는 이미지보다는 각 지방의 지역축제에서 인삼아가씨나 포도아가씨를 뽑듯이 연례 문학축제의 이미지로 새롭게 바꿔야할 것 같다. 상금과 명예를 놓고 한바탕 겨뤄보는 문학축제의 성격이면 모르되 그것이 권위 있는 등용문처럼 인식되는 상황 아래서는 언제까지나 문학지망생들의 사기를 꺾는 역효과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신춘문예라는 그 권위에 현혹되어 정작 개성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심사위원들의 구미에 맞추고 최신 신춘문예 경향을 분석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공산도 크기 때문이다. 예전보다야 그 권위가 못하다하도 아직도 신춘문예 아니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신춘문예의 존재 의의를 다시 생각해보아
야 할 것이다.
나도 한편으론 신춘문예나 유명 문예지에 작품이 당선되는 영광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몸살을 앓으며 매달리지는 않는다. 어쩌다 정성껏 작품을 선정하여 기대에 부풀어 투고를 해놓고 나서 발표만을 기다리다가 결과가 발표되는 날 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 동안의 내 노력, 자신만만했던 패기가 한 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그 작품이 다시는 보기도 싫어져 아무렇게나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폐기처분되어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지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기엔 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시일이 지나 다시 그 열정과 패기를 회복한다면 다행이지만 혹자는 그냥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문학에서 손을 떼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할 것이다. 신춘문예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문학의 생명이라 할 작가의 개성과 창의성보다는 일정한 규격과 기준을 요구하는 틀에 밖힌 공개행사적 요소가 다분히 있다.
어쩌면 내가 신포도의 원리를 얘기하며 내 재주없음을 호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닿을 수 없는 포도를 보며 '저 포도는 따먹어 봤자 실 것이다'하고 돌아섰다는 이솝우화의 여우 얘기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 백명 천여 편이 넘는 작품 중에 한 편이 선정되는 그 경쟁에 한번 투신한다는 것이 보통 용기를 가지고 되는 일인가.
한 명을 제외하고 수 백명이 겪을 실망과 좌절을 그냥 모른체 해도 좋단 말인가. 그 화려한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물론 생각이 다를 것이다. 자신들만이 문학을 할 자격이 있고 한국문단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자만과 교만이 은근히 고개를 들 수도 있는 것이다.
문단의 그런 현실을 엿보며 좌절을 겪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어떻게 해서라도 그 관문을 뚫고 나서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 팽배해지기도 할 것 아닌가. 말하자면 간판 따기 경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마치 미술계에서 어느 대학 출신이냐가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신춘문예가 아니라도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그 작품이 정당하게 인정받는 문단풍토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단이나 명예, 돈과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아무추어 작가들이 폭넓게 문학저변을 형성하고 있을 때 문학의 발전은 물론 서민들의 삶도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