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영어교육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일선학교의 여건개선요구에 대해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에서 23명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실효를 거두기 위한 철저한 후속대책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어교육강화의 기본취지에 공감한다고 해도 실현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에대한 충분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영어교육강화방안이 도리어 영어교육을 망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학급당 학생수를 23명으로 감축하려면 인수위에서 제시한 방안만 보더라도 최소 12명의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학교에 따라서는 학급당 인원이 40명을 넘는 경우도 있어, 12명을 감축한다고 해서 완전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인원수를 감축하면 결국은 학교당 학급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학교가 비대해 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더우기 학급수가 증가함으로써 각급학교의 교실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급증설을 위한 교실증축이나 학교신설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의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가급적 비대한 학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던 그동안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저출산 현상과 관련하여 교육부에서 교원수급정책을 장기적으로 세운 것 역시 백지화 해야 할 판이다. 많은 예산을 들여 마련한 방안이 쓸모가 없게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 교원배치기준을 학급수에서 학생수로 변경적용한 것도 백지화 해야 할 것이다. 학생수는 줄어들고 학급수가 늘어나게 되는데, 학생수 기준으로 교원을 배치한다면 결국은 교사들의 수업부담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교원배치기준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모든 학급의 학생수 감축보다는 영어시간만이라도 23명으로 감축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얼핏보면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지만, 이 역시 쉽게 시행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영어시간만 23명으로 감축한다는 것은 학급을 몇개 묶어서 수준별로 수업을 하겠다는 이야기로 보이는데, 예를들어 3개학급의 학생수가 110명이라고 할때, 이들을 4개의 수준으로 나눈다면 한 수준당 27.5명이 된다. 그렇게 되면 23명보다 많아지는 문제가 있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3개학급을 4개수준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교실이 한개 더 필요하다. 전체학급이 30학급쯤 되는 학교라면 영어수업을 위해서는 10개 이상의 교실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영어시간만을 위한 교실이 10개가 되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어수업을 위한 교실은 다른교실과 달리 충분한 방음시설과 멀티미디어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위의 이런 방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영어전용교사 임용과 관련한 문제이다. 영어교육강화와 관련하여 TV토론방송에 출연했던 인수위 관계자는 영어전용교사를 교대와 사대를 졸업한 임용대기자로 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영어전용교사 2만3천명을 임용한다면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1만여개 정도 된다고 볼때 학교당 2.3명이 배치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학교규모에 따라서는 4-5명이 되는 곳도 있을 것이고, 1명이 되는 학교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근무공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대규모학교의 경우는 현재도 교사들이 많아서 교무실의 근무여건이 안좋은데, 여기에 4-5명을 추가하면 근무여건은 더욱더 악화될 것이고, 별도로 교무실을 마련한다고 해도 결국은 공간확보가 쉽지 않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영어수업을 위한 공간확보도 어려운판에 교사들의 근무공간까지 확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행조건을 충분히 해소한다음에 영여교육강화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여건개선을 요구하는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단순히 반대를 위한 이유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만일에 이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선학교에 영어전용교사만 배치하게 되면 그 혼란은 불을보듯 뻔한 사실이다. 영어교육강화방안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고 해도 결국은 여건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더 큰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영어시간만이라도 학급당 인원을 줄인다고 했지만 학생들의 수업공간이 없어서 운동장에 천막이라도 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 염려스럽다. 학급당 23명 실현방안이 꿈이 아니기 위해서는 충분한 여건개선을 위한 방안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