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히 그렇지만 중학교를 막 졸업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3월 초에는 오고가는 도중에 자신의 모교에 자주 들르게 된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해서 적응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중학교가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요즈음 저녁때가 되면 올해 졸업생들이 자주 학교에 나타난다. 담임선생님 뿐 아니라 나머지 교과담당 선생님들까지 학생들이 찾는 대상은 다양하다. 그리고 중학교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자기들이 고등학생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데 그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중 한곳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나는 영어로 수업을 할 것이다. 앞으로 영어시간은 꼭 영어로 수업을 할 것이다.'라고 수업방법을 밝혔다. 그리고 첫수업부터 영어로 수업을 했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영어를 좀 한다는 아이들도 뭐가뭔지 몰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데요.' 그 학교 학생의 이야기이다.
다음날 영어시간도 마찬가지로 영어로 수업을 했다고 한다. 최소한 절반이상의 학생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는데, 한참 수업을 진행하던 교사가 '이제 더 이상은 어렵겠다. 앞으로는 영어로만 수업하지 않을테니 열심히 참여하도록 해라'고 했다고 한다. 알고보니 같은날 다른 학급에서도 영어교사는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영어로 수업을 하니 무슨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학부모들 마저도 영어로 수업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교육관련 정책이 발표되면 교육행정기관들은 '교사가 반대해도 학부모가 찬성하기 때문에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었다. 그런데 이번의 영어교육강화방안은 교사들 뿐 아니라 학생, 학부모까지도 반대의 목소리가 꽤나 높은 편이다. 이른바 교육의 3주체 모두가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반대하는 입장은 서로 다르고 다양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생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따라서 학부모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알아듣게 할려면 사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교사들은 여건이 미성숙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사교육비만 증가시키고 공교육이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영어교육강화를 위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수업을 듣고 따라하는 것은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데 계속해서 영어로 수업할 것을 고집한다면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교사와 학부모보다는 해당학생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영어로 수업하는 것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사교육도 불사해야 하고, 최종적으로도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들은 대학진학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은 누구나 예측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학생들에게 모두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줄 이유가 없다. 앞으로 초등학교부터 조금씩 조금씩 여건조성을 한 후에 서서히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여건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된다.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교사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결국은 아직은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학교의 제반여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영어로 수업하는 방안은 유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영어로 갑자기 수업한다고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알아들어야 수업을 듣지요.' 학생들의 이야기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