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었다.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햇살이 따사롭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의 화사한 대지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린다. 들풀들이 꽤 진한 녹색으로 산뜻해 졌다. 만물이 생동하며 삶의 강한 욕구가 넘쳐나는 3월이다. 처음으로 엄마 손을 잡고 벅찬 감격과 두려움과 조바심을 갖고 학교라는 울타리에 첫발을 디딘 신입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 속에서도 3월을 느낄 수 있다. 1년 전보다 십수센티미터씩 자란 아동들의 모습에서도 3월이 확실히 여느 달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활기찬 학교의 모습이 싱그럽기만 하다.
기대에 찬 새정부가 시작되고, 새학기가 시작되고, 새 교육정책이 시작되어질 3월을 맞았는데도 학부모들의 어깨가 가벼워지지 않은 것 같다. 교육의 효율성이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논술교육, 영어교육 등을 중요시 하면 할수록 사교육 의존도는 더 커지게 된다.
당국이 학부모가 신뢰할 만한 공교육 강화 방안을 내놓고, 인적 물적 지원을 확대하여 수준 높은 교수·학습을 한다고 해도 조바심은 더 커진다. 중요시 하면 할수록 내 아들딸은 더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고 사교육비를 절감하려 하는데 오히려 사교육의 필요성이 커지고 사교육비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 활용 능력의 중요성 때문에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영어몰입 교육이나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을 확대한다고 한다. 이런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수업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말로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영어로만 수업한다면 기대하는 학습성취도에 이르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 따라서 사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경제 논리와 이윤 창출에 민감한 학원에서는 공교육의 변화에 따라 사교육과정을 재빠르게 편성·운영하게 된다.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맞춘다. 공교육을 잘 받게 하고 학교에서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학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학원비 책정도 곧 자율화 할 것이라고 한다. 자율화에 편승한 어떤 학원에서는 30~40%이상의 인상을 예고했다니 학부모들의 등이 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작년 한해 2조 400억원이던 초중고등학생들의 사교육비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로 학부모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공교육에서 더 많이, 더 잘 가르쳐 사교육을 줄여 사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공교육 위에 사교육이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교육성과를 중시하고, 교육이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전인교육보다는 지식위주의 교육을 추구한다면, 학생별 학교별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공교육의 바람직한 변화에 편승한 사교육의 급격한 유인책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더디 가더라도 사회적으로 교육적으로 큰 충격은 피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먼 장래가 3월의 훈풍만큼이나 아늑하고 부드럽고 화사하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린 새싹들이 기성세대, 부모들의 과한 교육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 잘못된 인격의 소유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품성을 지녀 공동체 의식이 강하며 베풀 줄 아는 아름다운 멋쟁이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