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놀고 먹는다고요?

2008.04.09 21:25:00


교직에 대하여 잘 모르는 학부모들은 선생님이 거저로 먹고 노는 줄 안다. 학생들 앞에서 목에 힘주고 호령하는 줄 안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출근에서부터 퇴근까지 늘 종종걸음이다. 수업시간은 많고 업무는 밀려 있고, 맡은 일 처리에 부서별 업무에 협조하다 보면 하루 해가 짧다. 어느 새 퇴근 시간이다. 그렇다고 하던 일 놓아두고 퇴근할 수 없다.

리포터 학교의 경우, 08시 30분이 출근시각이지만 08시 이전에 오시는 분이 많다. 고경력의 모 선생님은 교장 출근 전에 장갑 차림에 비닐봉투를 들고 교정의 쓰레기를 깨끗이 줍는다. 덕분에 학생들의 등교길은 기분이 좋다. 교감 선생님은 그 선생님 부임 이후 쓰레기를 줍지 않아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금요일 현직연수만 해도 그렇다. 도서실에서 15:30 에 시작되었는데 연수자료만도 6가지다. 경기도논술능력평가 시행계획, 학교생활 안전수칙, 학교 폭력예방 및 추방을 위한 교사 대처 요령, 가정에서의 유선 인터넷 연결방법은 담당자가 요점만 간추린다. 도지정 봉사활동 시범학교 연수자료는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학교 학업성적관리규정은 신구대조표 10페이지, 관리규정은 무려 29페이지다. 담당부장이 중요 요약본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개정된 사항과 성적 처리시 유의사항을 강조한다. 그러다보니 퇴근시각 16:30 이 훌쩍 넘어 17:30 이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 더 이상 뒤로 미룰 수도 없다.

인상을 찌푸리고 시계를 쳐다보며 퇴근시각을 지켜달라고 군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모두가 학교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 교무실로 향하는 선생님들의 뒷모습이 안스럽기만 하다.

놀고 먹는 선생님들 별로 없다. 눈 씻고 찾아도 보기 어렵다. 초등학교 교사인 리포터의 아내는 학년초부터 계속 귀가 시각이 밤 10시 30분이다. 근무지가 바뀌고 주요보직을 맡았다지만 토요일, 일요일, 개교기념일도 없이 퇴근 시각이 항상 밤이다.

너무 한다시퍼 선배 장학관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교직생활 충실도 좋지만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고 있는데 이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선배님이 후배를 달랜다. "이 교장, 나는 그런 생활을 6년간이나 참았어. 아내를 도와주어야지, 어쩌겠나?" 초등의 심각한 경쟁 상황을 알려주며 그렇게 해야 살아남는 현실을 일깨워 준다. 한 수 가르쳐주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학생지도 또한 만만하지 않다. 중학생은 중학생대로,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다루기가 어렵다. 말 한마디로 통하는 교실이 아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교권은 사라지고 말았다. 학생 인권만 강조했지 교사 인권은 오간데 없다. 교사의 통제를 벗어난 학생이 한 둘이 아니다. 이것을 인내력으로 참고 이겨내자니 속은 속대로 썩는 것이다.

다면평가, 근평 10년 반영, 경력평정 하향 조정으로 교직의 길은 갈수록 험하기만 하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아니 되었거나 부모가 지도를 포기한 학생들은 교사들도 더 이상 다루기 어렵다. 학습지도 준비, 학생생활지도, 업무처리 등 처리하려면 몇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니 항상 쫒기는 학교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 전엔 자식들도 아빠가 선생님이거나 엄마가 선생님이면 그래도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세상을 탓할 수도 없고….

놀고 먹는 선생님들, 그런 선생님들 이제는 거의 없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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