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유불다(時有不多)’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어떤 일이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 해야 답을 찾아낸다. 뜬금없이 만난 글자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해결방법이 있다.
‘다불유시(多不有時)’
그렇다고 ‘많을 다, 아니 불, 있을 유, 때 시’로 뜻풀이가 되는 사자성어도 아니다. 그냥 쉽게 ‘시간은 있지만 많지 않다’나 ‘많지 않지만 시간은 있다’로 풀이하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뜻으로 ‘多不有時'를 사용했을까? 의견이 분분하나 수세식변소(water closet)의 약자인 'W.C.'를 뜻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다. 주로 조금씩 각색되어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읽어보면 재미있다.
시내에 나갔던 시골 할아버지가 문 앞에 모르는 글자(W.C)가 써있어 화장실을 찾느라고 고생을 했다. 마침 옆에 젊은이가 있어 무슨 글자냐고 물었더니 화장실을 뜻하는 ‘더불유시’라고 친절히 가르쳐 줬다. 집에 온 할아버지가 기억해보니 ‘다불유시’였고 잊기 전에 얼른 화장실 문에 ‘多不有時’라고 써넣었다.
훗날, 이곳을 지나다 작은 문에 ‘多不有時’라고 써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이 글자에 심오한 뜻이 숨어있고, 글을 지은 사람은 학식이 높은 도사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막상 할아버지를 만나 ‘多不有時’에 대한 깊은 뜻을 물으면 그냥 화장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이가 공부를 오죽 안 했으면 ‘다불유시(W.C)’도 모르느냐고 핀잔까지 줬다.
올 2월호 ‘좋은생각’에도 ‘多不有時’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학교 교장 정동용 님이 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곳’에 ‘이외수 소설가가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재미로 써 붙인 多不有時라는 글귀를 소설에 인용해도 되는지 물어오셨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글로 봐 시인학교의 화장실에는 오래 전부터 ‘多不有時’가 붙어있던 것 같다.
이번 연휴, ‘인터넷이나 좋은생각’에서 그림이나 글로 접했던 ‘多不有時’를 직접 내 눈으로 봤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에 있는 사찰 보석사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바람에 누린 행운이었다.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로 부른다. ‘多不有時’를 앞에 두고 다른 뜻을 각해보니 ‘필요한 시간은 많지 않다'로도 풀이가 된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多不有時’는 재치가 번득이는 말이면서 해우소 만큼이나 의미심장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는 급한 일도, 근심걱정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우리네 삶이 행복한 순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화장실에 앉아 ‘필요한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행복의 의미도 크게 다가온다. 화장실에서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도 인생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