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가 학교교육을 불신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예전같으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어도 집에가서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금새 학부모들이 학교에 항의를 한다. 심지어는 교권침해 사건으로까지 비화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으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무조건 학교에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도 반전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학교교육을 불신하는 학부모들 중에는 학원과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이 막연히 학교보다 잘 가르친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수준별 이동수업에 관한 것이다. 좀더 정확히 하자면 학교에서는 수준별 이동수업이지만, 학원에서는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학원이 학교보다 급당 인원이 절반정도가 채 되지 않는다. 보통 15명 내,외로 한 수준을 구성하게 되는데, 학교는 한 학급의 인원이 35-45명(서울의 경우)이니 학원과 비교하기 어렵다. 이런 연유로 학부모들이 학원을 더 신뢰하는 것일수도 있다. 왜 학교는 학원처럼 그렇게 못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또 하나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학원들의 체벌(물론 전체 학원은 아니겠지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체벌을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학원에서는 체벌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논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학원가의 체벌이 아이들의 학습에 효과가 상당히 높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학부모들은 학원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교육당국의 대처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학원들의 교육여건이 학교에 비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눈치다. 아니 학교의 교육여건이 여의치 않음에도 무조건 학원을 비교대상으로 하면서 학교를 학원에 견주어 경쟁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경쟁을 치열하게 한다면야 학교가 학원보다 못할 것이 없겠지만, 여건개선에는 매우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의 학교자율화 문제만 하더라도 각 시,도교육청에서 나름대로의 규정을 정하고 자율화의 수위를 정하고 있지만 학교교육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시,도교육청이 거의 없다는 것은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하겠다고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에서 발표했지만 이를위한 여건개선 의지를 보인 곳이 거의 없다. 확대는 하지만 여건개선이 없다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니면 억지로라도 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억지로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인들이야 뭐가 어렵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2개 학급을 3개 수준으로 나누어서 실시하려면 1개의 여유 교실이 필요하다. 학급보다 1개 수준이 더 있으니 당연히 수업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1개 수준을 담당할 교사가 더 필요하니 억지로 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대하겠다고 한다. 만일 4개과목 정도를 수준별 수업으로 한다면 10개 학급이 한 학년인 학교의 경우는 해당 학년만 과목당 5개의 여유교실이 필요하다. 4개 과목이면 동시에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20개 정도가 더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실시 하기 어렵다. 운동장 구석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하지 않는한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억지로 한다고 해도 주당 1시간 정도만이 가능할 것이다. 주당 1시간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매일같이 수준별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원과의 경쟁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무조건 하라는 식의 지시보다는 학교의 어려움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수준별 이동수업의 기본취지에 공감을 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학원등의 영리기관에서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들 영리기관에서 학교의 여건이 안되어 수업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가서라도 수업을 하라고 할 것인가.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라면 해야한다가 아니고 한다면 여건을 마련해 주겠다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의 학력신장을 위해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때, 최소한 교사때문이 아니고 학교의 여건때문에 실시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꼭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여건조성에 우선적인 노력을 하는 교육당국의 조치가 아쉽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