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 났어요. 어떡해요?

2008.05.09 11:43:00

 5일 만에 본  아이들이(학생) 갑자기 달려들며 모여들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큰일 났어요" "우리 죽어요"이다.

"선생님, 저 죽어요. 어떡해요."
"무슨 소리야. 왜 죽어?"
"모르세요. 우리 광우병 걸려 죽어요. 저 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을래요."
"맞아요. 롯데, 농심, 크리스피, 햄버거 이런 거 먹으면 이제 안 돼요. 선생님도 먹지 마세요."

이젠 주변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달려들어 쇠고기 수입에 따른 열변을 쏟아놓는다. 어떤 아이들은 오는 17일에 항의하러 서울에 갈 거라며 한 술 더 뜬다. 다 큰 녀석들이 어린아이마냥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쏟아내는 이야기를 쑥 듣고 있으려니 속은 차 있다.

며칠 만에 본 아이들은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예전엔 사회의 어떤 현안이 생겨도 나몰라라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이번엔 아니다. 조금 과장된 생각들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 표출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내놓은 여러 정책들에 대한 불만도 가감 없이 쏟아냈다. 0교시 수업, 우열반 수업, 학원자율화에 따른 학교의 학원화에 대해서 별 말이 없던 아이들이 갑자기 쇠고기 수입을 계기로 한반도 대운하까지 들먹이며 모든 불만들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야, 너희들 갑자기 왜 그래?"

아이들의 생각을 떠보려 짐짓 딴청을 피웠더니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한다.

"아니, 그걸 몰라서 그러세요. 미국에서 들여온 쇠고기 먹으면 우리 다 죽어요. 선생님 아이들도 죽고요."
"우리 급식 먹는데 쇠고기도 나오잖아요. 그 고기가 무슨 고기겠어요. 우리나라 고기겠어요? 싸디 싼 병 걸린 미국 거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럼 우리도 위험하잖아요."

아이들의 말은 직설적이다. 간혹 더 험한 발언까지 한다. 한두 명이 아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끼리끼리 모여 히득거리다가도 '소'자만 나와도 거품을 문다.

이런 아이들을 향해 집권층과 보수언론들은 일부 좌파단체가 어린 학생들을 꼬드겼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요즘 학생들이 언제부터 사회 문제점에 신경을 쓴 적이 있는가. 아이들은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코뚜레를 뚫고 데려간다고 해도 안 간다.

0교시 수업이나 우열반 수업과 같은 것은 면역이 돼 있어서 불만은 있지만 이번처럼 표출시키진 않았다. 그러나 먹거리 문제만은 달랐다. 그렇게 좋아하던 햄버거나 피자 등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니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열흘만 먹지 않으면 수입이 중단된다면서 오히려 어른들한테 먹지 말라고 강요한다. 그것도 강한 어조로 말이다.

"저 시집도 못가고 죽으면 어떡해요."
"결혼해도 문제죠.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그 아이가 병 걸릴지도 모르잖아요. 정말 우리나라 왜 이래요. "

일부 언론이나 아무 이상이 없기 때문에 미국산 소를 들여오겠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아이들의 이런 생각이나 주장이 얼토당토 않는 소리라고 무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각이 조금은 과장된 면은 있지만 아이들은 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이다.

공부하기도 바쁜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밤늦게까지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겠는가. 어떤 사람은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없어서 유희의 한 방법으로 청계광장에 모였다는 말을 했다는데 세상 돌아가는 걸 몰라도 정말 모른다. 그 정도로 밖에 국민들 마음을 못 헤아리니 국민들 먹을거리 주권마저 거저 넘겨줬다는 비난을 받는 게 아닌가.

아이들은 지금 운동장에서 교실에서 웃고 있지만 마음은 들끓고 있다. 촛불 들고 나가자고 한다. 거기엔 어떤 이유도 없다. 그저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고자 한 순수한 마음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여기엔 경쟁과 효율만을 강요하는 이 나라가 아니라, 함께 즐겁게 웃음 주며 살아가는 나라를 꿈꾸는 작은 소망들이 촛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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