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2008.06.16 01:09:00


시험문제 한번 출제할려면 1주일 이상이 필요합니다. 속된 말로 죽기살기로 머리를 짜내어 시험문제를 출제합니다. 하루에 몇 문제 출제하지 못합니다. 출제한다고 끝나나요. 그 문제 검토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기출문제와 비교해 보아야지요. 시중의 참고서, 문제집과도 비교해 보아야지요. 시중의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모두 가지고 있나요. 100% 완벽하다고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를 모두 출제하고 나서도 찜찜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느교사의 푸념이다.

시험문제 출제의 어려움을 교사들이 호소하고 있다. 위 교사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교육청에서 내려보낸 서식에 맞춰서 출제를 해야 한다. 만일 그대로 맞추지 않고 시험문제를 출제하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때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문구작성부터 표, 그림에 이르기까지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출제에 아이디어를 내서 임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외적인 요건까지 채워야 하니, 교사들에게는 시험문제 출제가 스트레스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교사의 시험문제에 저작권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기출문제를 그대로 판매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이다. 저작권료를 단 한푼도 내지않고 기출문제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판매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시험문제도 저작권이 있다는 판결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들은 계속해서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근처의 문구점이나 서점에 가보면 그 학교의 기출문제집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손을 쓸수 없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기출문제를 다시 출제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 하지만 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믿지 않는다. 업체들이 기출문제의 중요성을 자꾸 강조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익을 올려야 하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업체들의 무책임한 발상때문에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기출문제는 유사한 문제도 출제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제도에서는 출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출문제는 교사가 학교를 옮겨도 그대로 따라다닌다. 5년에 한번씩 학교를 옮겨다니지만 기출문제는 교사를 따라다닌다. 학원에서도 기출문제는 시험때가 되면 가치가 높아진다. 기출문제를 집중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시험문제에는 기출문제는 출제할 수 없다. 만일 기출문제를 출제하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만 효과없는 기출문제에 매달려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업체에서 챙기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교사들은 1주일 이상을 꼬박 투자해야 시험문제를 출제할 수 있다. 그런데 업체에서는 아주 손쉽게 기출문제를 입수하여 학생들에게 판매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시험문제가 돈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교사의 한사람으로 참을 수가 없다. 제자들을 위해 출제했던 문제인데 제자들이 이 문제를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험문제를 판매하는 업체들은 그 행위를 당장에 멈춰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 돈벌이를 하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시험문제에 출제자의 이름을 명기하여 저작권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이 문제는 학교자체에서 방안이 세워져야 한다. 각 학교별로는 시험지 원안의 형식이 똑같은 것을 감안할 때 이원목적분류표 뿐 아니라 시험지에도 출제교사의 이름을 명기하도록 통일을 할 필요가 있다. 시험문제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는 업체의 잘못이 가장 크긴 하지만, 업체의 잘못만 탓하지 말고 교사들도 스스로 권리를 찾기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재주만 부리고 돈은 업체가 챙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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