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초에 생활지도 담당선생님이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선생님들과 결연을 맺어주었는데 명단만 받았던 터라 상담할 기회가 없었다. 핑계일 수 있지만 학교의 전반적인 일을 챙기다 보면 잊고 넘어가기 쉽다. 각종행사나 회의로 출장도 많았고 교내에 다섯 가지 공사가 진행되어 까마득하게 잊었는데 담임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 현우의 생활이 흐트러지고 무더위와 함께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한다.
아차, 이러다가 1학기를 그냥 넘길 것 같아 시간을 내어 교장실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아이들도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꽉 짜인 일과에 방과 후 교실 그리고, 행사가 이어질 때는 나의 일정과 빗나가 조용히 만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6교시를 마치고 현우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서 내방으로 들어선다. 우선 마음의 안정을 갖도록 웃으며 “현우 아주 튼튼하네!” 하며 의자에 앉으라고 하였다. 다소 안심은 하는 듯 했으나 그래도 좌불안석이다.
“현우와 교장선생님과 결연이 맺어졌는데 한 번도 만나서 이야기를 못 나눠 미안 하구나 !”
“현우 집은 어디야?”
“리버타운 앞에 살아요.”
“가족은 ?”
“할머니하고 둘이 살아요.”
아빠는 서울에서 원룸을 얻어 돈벌이를 하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엄마는 이혼을 하여 어느 곳에 사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6학년 이니까 사춘기에 접어들 텐데 어머니의 정이 얼마나 그립겠는가?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 다녀간다고 한다. 팔순의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자니 얼마나 힘이 드실까 상상이 간다. 또한 측은해 보이는 손자를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할머니 일 좀 도와드리니?”
청소도하고 빨래도하고 밥도 짓는다고 한다.
“현우 정말 효자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현우는 눈을 계속 깜박인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 되어 심리적으로 불안해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친척은 없니?”
시내에 고모와 큰집이 있는데 가끔 다녀가신다고 한다.
“현우야! 네 환경이 지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좋지 않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야기 했지만 얼마나 마음에 와 닿을까? 훌륭한 인물들의 어린 시절도 어려웠던 분들이 많았으니 어려움을 참고 열심히 노력하면 현우도 이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격려해주었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공책이 있어서 몇 권 주었더니 조금은 표정이 밝아진 것 같으며 들어올 때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나간다.
현우가 나간다음에 책상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초등학교에서는 교과내용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성의 기본 틀이 바르게 형성되도록 아이들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역할 상담자역할을 하여 삐뚠 길로 가지 않도록 보살펴주는 일이 매우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는 교장실로 불러서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가정도 방문해 보고 전화로 이야기도 나누고 편지글도 써주고 학교 숲 나무그늘에 앉아 이야기도 나눠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창밖의 정원에 서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달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