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주는 교훈

2008.07.28 09:36:00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안개가 피어난다. 꽃이 피어나듯이 말이다. 지난 토요일도 그러했는데. 무더위 속에서도 유달리 울산만은 시원한 구름띠로 인해 시원한 공기 마시고 맑은 공기 마시고 푸른 공기 마시면서 안개의 피어남에 매료된다. 피어남 때문에 미소를 머금는다. 피어남 때문에 생각에 젖는다. 피어남 때문에 기뻐한다. 피어남 때문에 평안을 느낀다.

이른 아침에 안개는 피어났다. 얇지만 우리의 사무실을 감싸주고 있다. 살며시 내려 앉아 신비감을 더해 준다.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흥미를 더해 준다. 내가 앉은 사무실 아니면 그걸 맛볼 수가 없다. 우리 사무실 아니면 안개로 인해 상상의 바다로 헤엄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머무는 사무실이 아니면 안개와 나무를 동시에 볼 수가 없다. 안개와 나무는 생각을 만든다. 안개와 나무는 삶을 가르친다. 안개와 나무는 우리를 고상하게 만든다. 안개와 나무는 우리에게 상상력을 키우도록 한다. 안개와 나무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비록 짧게 피우다가 사라지긴 해도 나에게 교훈을 준다. 안개는 장애물만은 아니다. 걸림돌이 아니다. 안개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안개는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안개는 영원히 없어져야 할 존재가 아니다. 안개가 있음으로 자연을 자연답게 한다. 안개가 있음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안개가 있음으로 사람됨을 되돌아보게 한다. 안개가 있음으로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어떤 시인이 노래한 안개에 대한 것을 생각케 한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

우리는 종종 학교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여러 학생들과 함께 가까이에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 가까이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바로 안개 뒤에 숨기 때문이다. 서로 시기하는 안개 때문이다. 서로 불신하는 안개 때문이다. 서로 미워하는 안개 때문이다. 서로 인정 못하는 안개 때문이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지 못하는 안개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종종 가까이에 살고 있으면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처럼 느끼면서 고독해 한다.
 
이와 같은 시기, 불신, 미움, 다툼, 질투의 안개는 같은 교육가족인데도 달나라에 사는 것처럼 비치게 한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게 한다. 서로 얼굴을 붉히게 한다. 서로 잘난 체 하게 만든다.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리게 한다. 자신을 마음대로 행동하게 한다. 공동체를 혼탁하게 한다. 학교를 혼미하게 한다. 방향을 잃어버리게 한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는다. 힘들어하지 않는다. 괴로워하지 않는다. 시기의 안개는 곧 사라질 것이 때문이다. 불신의 안개는 곧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안개는 곧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개는 생명이 짧지 않은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 때만 조심하면 사고도 피하고 그 때만 피하면 방향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 안개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면 영원히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도 먼 것같이 느끼며 외롭게 살 것인데 그러하지 않으니 천만다행이다.

안개가 사라지면 우리는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안개가 사라지면 우리는 멀리 있지 않기에 외로움도 사라지게 된다. 안개가 사라지면 우리는 제 자리의 위치를 알게 된다. 안개가 사라지면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서로 존중하며 평온하게 살아가게 된다. 안개가 사라지면 맘대로 행동하지 않게 된다. 안개가 사라지면 제 속도를 내며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안개가 사라지면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되니 좋다.

지금 허연 안개는 서서히 걷혀가도 있고 푸른 안개로 변하고 있다. 희뿌연 구름도 푸른색을 머금는 듯하다. 구름사이로 비치는 푸른 빛살도 조금씩 선보이고 있다. 푸른 들판은 아직 푸르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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